글로벌 투자은행과 외국계 자산운용사가 국내 주식시장에서 불법 공매도로 총 218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무차입 공매도와 주가 조작 등의 수법으로 국내 주식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남부지검 불법 공매도 수사팀(팀장 김수홍 금융조사제1부장)은 글로벌 투자은행 A사와 외국계 자산운용사 B사 및 B사 소속 트레이더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15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A사는 2021년 9월1일부터 2022년 5월11일까지 소유하지 않은 국내 주식 총 57만3884주(주문액 합계 약 183억2261만원)를 2만5219회에 걸쳐 무차입 공매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무차입 공매도는 주식을 빌리지도 않고 팔아버린 뒤 나중에 주식을 사서 갚는 방식으로, 현행 자본시장법상 엄격히 금지돼 있다.
A사 소속 트레이더들은 회사 전체의 주식 잔고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복수의 독립거래단위(AU) 운영을 핑계로 공매도를 장기간 반복했다. AU는 외국 금융회사가 회사 내 여러 팀을 마치 독립된 회사처럼 취급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A사 직원들은 AU를 핑계 삼아 “우리 팀은 괜찮다며” 불법 거래를 계속해 왔는데, A사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개선하지 않고 방치해 사실상 범행을 용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국계 자산운용사 B사의 경우 소속 포트폴리오 매니저가 2019년 10월18일 SK하이닉스 주식의 블록딜 과정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35억6800만원의 이익을 취득한 혐의를 받고 있다. 블록딜은 주식을 대량으로 사고팔 때 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장외에서 은밀히 거래하는 방식이다.
이 매니저는 미공개 블록딜 정보를 이용해 8만900원이었던 SK하이닉스 주가를 8만100원으로 인위적으로 하락시킨 후 낮아진 가격으로 블록딜 매수에 합의하고 무차입 공매도를 실행했다.
구체적으로 매니저는 블록딜 협의 중 매도스왑 주문을 통해 단시간에 SK하이닉스 주가를 떨어뜨린 뒤, 하락한 주가에 연동된 블록딜 가격으로 32억2000만원의 이익을 취득했다. 또한 확보한 저가 주식으로 무차입 공매도를 실행해 3억4800만원의 추가 이익을 얻었다.
검찰은 B사가 소속 매니저의 불법 행위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하고 내부 방지 시스템을 갖추지 않아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은 국내 개인 투자자들과 달리 외국 금융투자업자들이 국내 금융시스템의 제약을 받지 않는 점을 악용해 무차입 공매도를 남발한 사례로 평가된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외국 금융투자업자와 외국인 투자자에게도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이 엄정하게 적용됨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앞으로도 불법 공매도를 비롯해 자본시장의 공정과 신뢰를 훼손하는 금융·증권범죄에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외국계 금융기관의 AU 제도가 불법 무차입 공매도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제도적 문제점을 금융위원회 등 주무부처에 신속히 통보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