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한민국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배출국이 되었다. 한강의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문학계나 출판계는 물론 전 국민이 환호하였다. 비교적 젊은 작가가 세운 이 거대한 기념비에 뜻밖이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국민 모두가 이 첨단의 영상 시대에 활자 시대의 귀환을 예감케 해주는 반가운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차분하게 생각해보면 그럴 만한 작가가 선택되었고 한국문학은 이제 ‘한강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한강은 습작 시절에도 시를 먼저 썼고 등단 순서도 시인이 소설가보다 한발 앞섰다. ‘작가 한강’의 육체 안에는 그야말로 ‘시인 한강’이 존재론적 원적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그 결속된 힘으로 그는 슬럼프 없이 여러 편의 걸작을 썼다. 고통은 컸겠지만 그 고통을 안고 낱낱의 활자를 기록하던 그의 손길은 따스했을 것이다,
잘 알다시피 노벨문학상은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수상 관행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물론 20세기 후반부터 서구와 비서구의 관점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자각이 생겼고 그에 따라 1980년대 이후 비서구, 유색인종, 여성이 수상하는 경우가 많아지긴 했다. 장르적 측면에서도 소설 외에 시, 희곡, 르포, 심지어는 대중가요에 이르는 다양성을 견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서구 중심의 안목을 버린 것은 결코 아니다. 반대쪽으로 조금 문을 열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강이 아시아 여성작가로는 최초의 수상을 했다. 이는 ‘아시아’와 ‘여성’이라는 이중의 타자성을 극복한 크나큰 성과인 셈이다.
한강의 수상을 결정한 스웨덴학술원은 그의 소설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었다고 평가하였다. 그만큼 그의 서사는 ‘역사’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다룰 때에도 종종 ‘시’에 근접해갔다. 그의 문장은 독백이든, 대화든, 묘사나 서술이든, 그의 손가락과 심장에서 솟아나온 물 샐 틈 없는 목소리를 통해 촘촘하고 완벽하게 구축되었다.
현대사의 아픔과 개인의 상처를 서정적이면서도 강렬한 필치로 그려낸 ‘작별하지 않는다, 일상의 폭력을 계기로 하여 식물적 상상력을 발견해간 ‘채식주의자, 공공 기억의 폭력에 대한 위안과 치유의 서사를 담은 ‘소년이 온다 등은 그러한 ‘시적 산문’의 가장 첨예한 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심사위원회는 한강이 역사를 마주하는 독자적 방식, 그러니까 역사가 전개되어가는 경과를 재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당시의 현장, 장면, 순간을 내면의 목소리에 담아 그 트라우마를 위무하고 함께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그리고 그의 시적 문체가 생성하는 함축적이고 풍요로운 상상력을 상찬한 것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문학계와 한국문학번역원이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전문 번역자를 양성하는 한편, 다른 언어권과의 교류를 확대해오면서 자연스럽게 그 노력의 축적이 이러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한강의 수상은 그의 개인적 영광을 넘어 우리 사회의 독서문화와 한국문학의 존재 방식을 여러 차원에서 바꾸어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우수한 번역 인력 확충, 문학을 비롯한 기초예술에 대한 항상적 지원, 대학교육에서의 인문학 범주 확대 등 국가와 민간이 함께 나서야 할 과제를 숱하게 안고 있다. 당연히 국가의 위상에 예술이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물적인 자각과 방안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번에도 한시적 열광에 그치고 문화예술에 대한 치지도외가 계속된다면, 제2의 한강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번 한강의 수상은 우리에게 그러한 노력을 주문하고 있다.
축하가 늦었다. 고독과 고통의 글쓰기를 넘어, 그 어둑한 시간을 지나, 인간의 위엄과 궁극적 긍정을 담은 그의 소설이 모두에게 다가가서 저마다의 꽃으로 피어나기를 마음 깊이 소망해본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