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경기 파주에 위치한 알코올 감지 센터 생산업체 센텍코리아. 기자가 음주운전 방지장치가 부착된 차량 운전석에 탑승해 시동 버튼을 누르자, 차체와 연결된 음주측정기에 숨을 불어넣으라는 의미의 ‘BLOW’ 표시가 떴다. 기자가 맥주 한 캔을 마신 지 약 20분이 지난 상태에서 기기에 숨을 힘껏 불어넣었다. 약 4∼5초를 기다리자 경고음이 울리면서 측정기에 실패했다는 의미의 ‘FAIL’ 표시가 떴다. 기자가 탑승한 자동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상습적인 음주운전자의 차량에 이 같은 방식의 ‘음주운전 방지장치’ 부착을 의무화하는 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을 열흘 앞두고 있다. 제도 안착을 위해선 미비한 규격 표준화를 서두르고, 검사 설비를 마련하는 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5일 경찰에 따르면 상습 음주운전자에게 음주운전 방지 장치 부착을 의무화한 개정 도로교통법이 이달 25일부터 시행된다. 5년 이내에 두 번 이상 음주운전 단속에 걸린 사람은 음주운전 방지장치를 단 차량에 한해 조건부 운전면허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후 면허를 재발급받지 못받는 ‘결격 기간’ 종료 후 해당 기간만큼 음주운전 방지장치를 부착하고 운전해야 하는 것이다. 최소 2년간의 음주운전 면허취소 결격 기간이 지난 2026년 10월 이후에서야 실제 장치를 부착한 운전자가 나올 전망이다.
음주운전 방지장치는 운전자가 스스로 음주측정을 해야만 시동이 걸리는 기기다. 운전자의 호흡 샘플 내 알코올을 분석하는 분석기와 제어장치에 신호를 전달하는 장치가 전기회로로 연결돼 알코올이 감지되면 시동이 걸리지 않고 몇 분 후 재측정을 할 수 있는 원리다.
미국·캐나다 등에서 이미 널리 상용화된 기술이다. 한국교통공단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2006년 이 같은 시동잠금장치(Ignition Interlock Devices·IID)를 도입해 현재까지 알코올을 마신 상태에서 운전을 시도한 230만명 이상의 운전자들을 막은 것으로 분석됐다. 미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또 접촉 기반으로 운전자의 알코올 섭취를 감지하는 센서 등 기술이 더욱 광범위하게 적용될 경우 미국에서 매년 약 9400명의 사망자 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음주운전 방지장치의 기기값과 설치 비용은 약 250만∼300만원으로 책정될 전망인데, 전액 운전자가 부담하게 된다. 센텍코리아 관계자는 “기기 설치 단가는 세계적으로 표준화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9일 경찰청은 음주운전 방지장치 도입을 앞두고 운행기록 미제출자에 대한 과태료 규정 등 구체적인 조항을 담은 ‘도로교통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음주운전 방지장치를 등록한 운전자는 6개월 주기로 장치의 정상 작동 여부를 점검하는 정기검사를 받아야 한다. 측정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음주운전 방지장치와 음주운전 방지장치가 해체·조작된 경우 등을 걸러내기 위해서다.
관련 업계는 제도의 실효성을 위해 보완해야 할 점이 아직 많다고 말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음주운전 방지장치를 설치해 줄 인력과 6개월에 한 번씩 교정을 담당할 인력이 상주하는 센터가 전국적으로 설치되어야 하는데, 실질적 운영·관리를 담당할 장소와 인원 등이 정해지지 않았다”며 “미국의 경우 장치 정기검사를 하는 센터가 드라이브스루 형태로 설치돼 데이터를 중앙 서버로 보내는데, 참조할 만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알코올 측정의 국제표준 가운데 어떤 규격을 따를지에 대해서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시험기관에서 인증받지 않은 측정장치는 차량에 장착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규격이 조속히 합의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유럽 표준을 모태로 장치 규격서의 안을 만들었고, 고시를 통해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라며 “장치 설치는 한국도로교통공단 인증을 받은 업체나 협력업체가, 교정은 운전면허시험장에서 도로교통공단 관계자가 담당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