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장 임기는 몇 년일까. 2006년까진 ‘6년’이 정답이었다. 1988년 헌재 창설 후 한동안 대통령이 행정부 몫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할 때 그중 1명을 헌재소장으로 발탁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재판관이 됨과 동시에 헌재소장에 오른 이가 헌법상 재판관 임기 6년을 재직하고 물러났으니 자연스럽게 ‘헌재소장 임기는 6년’이란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 초대 이규광(1988∼1994), 2대 김용준(1994∼2000), 3대 윤영철(2000∼2006) 헌재소장이 다 6년 임기를 채웠다. 그런데 2006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사법연수원 7기 동기생 전효숙 재판관을 헌재소장 후보자로 내정하며 그만 사달이 났다. 애초 대법원장 지명으로 헌재에 입성한 전 재판관이 헌재소장으로서 6년 임기를 새로 시작하고자 재판관 자리에서 일단 물러난 것이 발단이 됐다.
노 대통령 그리고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대립각을 세우던 민주당 조순형 의원은 ‘자진 사퇴로 현직 재판관이 아니게 된 전효숙씨는 헌재소장 자격이 없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 헌법 111조 4항을 근거로 들었다. ‘헌재소장은 재판관 중에서 임명해야 하므로 전직 재판관은 안 된다’는 논리였다. 전 전 재판관이 노 대통령과 연수원 동기생으로 서로 가까운 사이라는 점을 못마땅하게 여긴 제1야당 한나라당(현 국민의힘)도 조 의원 주장에 적극 동조하고 나섰다. 여야 간 격렬한 공방 끝에 결국 ‘전효숙 헌재소장’ 카드는 무산되고 말았다. 대신 노 대통령은 이강국 전 대법관을 새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당시 국회에 제출된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 제목이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를 겸하는 헌법재판소장(이강국) 임명동의안’이다. ‘헌재소장은 재판관 중에서 임명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과의 충돌을 피하려는 고육책이었다.
이후 헌재소장은 현직 재판관 중에서 임명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재판관 임기 6년 가운데 헌재소장이 되기 전 재판관으로 일한 기간을 뺀 잔여 임기가 곧 헌재소장 임기로 여겨졌다. 자연스레 4대 이강국 헌재소장 이후로는 5대 박한철(3년9개월), 6대 이진성(10개월), 7대 유남석(5년2개월) 헌재소장의 사례에서 보듯 임기가 제각각이다. 현 8대 이종석 헌재소장의 경우 오는 17일 퇴임하면 약 10개월간 재직하는 셈이다. 누구는 임기가 5년이 넘고 누구는 채 1년도 되지 않으니 말 그대로 복불복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은 5년, 국회의장은 2년, 대법원장은 6년, 감사원장은 4년, 국회의원도 4년으로 고정된 점과 극명히 대비가 된다. 대한민국 최고 사법기관의 수장이자 국가 의전 서열 4위에 해당하는 요인(要人)이 임기조차 명확하지 않다니, 이래서야 헌재의 위상이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헌재와 늘 비교되는 대법원의 경우 현직 대법관이 대법원장으로 올라서도 임기 논란이 벌어지지 않는다. 헌법 105조 1항이 ‘대법원장 임기는 6년’, 같은 조 2항은 ‘대법관 임기는 6년’이라고 따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즉, 현직 대법관이 대법원장에 임명되면 그가 대법관으로 재직한 기간은 무시하고 대법원장으로서 6년 임기를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1987년 현행 헌법을 만든 이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헌재소장과 대법원장 임기를 서로 다르게 설정했는지는 오늘날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대법원장보다는 헌재소장의 비중을 훨씬 낮게 평가했다는 점이다. 대법관은 물론 고등·지방법원 법관까지 수천명의 판사를 통솔해야 하는 대법원장과 비교해 재판관이 9명뿐인 헌재를 관리하는 헌재소장의 직무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란 선입관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헌재가 지닌 대통령 탄핵심판권, 위헌 정당 해산심판권 등을 두고 ‘설마 이런 권한이 실제로 발동되는 일이 있겠어’ 하고 여긴 이들의 저지른 실수의 후과(後果)가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