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직 통신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인터넷이 안 되고 있었지만, 친구와 서울숲에서 만나기로 해서 지하철을 타고 뚝섬역에 내렸다. 서울숲 가는 길을 몰라서 길거리에서 한 사람에게 다가가 “저기요, 혹시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라고 하며 길을 물어보았다. 나는 원래 길치라서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상대방은 나의 이런 접근에 당황하는 것 같았다. 마치 나를 피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이미 늦은 듯, 그 사람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네?”라고 대답했다. 나는 “혹시 서울숲 가려면 이 방향으로 가는 게 맞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여전히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었다. 그 후에도 길을 물어봐야 할 상황이 종종 있었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점차 그 반응에 익숙해졌다.
얼마 전에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비록 잠시였지만 “한국어를 모르는 척하고 피할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단순히 버스 관련 질문을 했고, 나는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조금 뒤, 나는 한국어를 모르는 척하고 피하고 싶어 했던 나 자신을 보고 실망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이 종교 이야기를 하며 종교시설로 초대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가끔은 한국어도, 심지어 영어도 모르는 척할 때가 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질문 하나 하겠다고 다가오더니 갑자기 종교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나는 한국어를 잘 모른다고 했더니, 그 사람은 바로 영어로 말을 이어갔다. 나는 출근길이라 바쁘다고 말해도 그 사람은 계속 따라왔다. 꽤 오랫동안 쫓아오다가 마침내 포기했지만, 이 경험 이후로 나는 종교 이야기를 꺼낼 것 같은 사람들은 피하고, 한국어와 영어도 모르는 척하게 되었다.
포항에 사는 튀르키예 친구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포교자들이 친구의 집까지 따라와 억지로 초대하려고 했고, 목이 마르니 물 좀 주겠냐고 하면서 종교 이야기를 하려고 애썼다고 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나 역시 모르는 사람들을 더욱 경계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길을 물어봤던 사람들도 단순히 질문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을까 봐 당황하고 머뭇거렸던 것 같다.
나는 모두의 신념을 존중하지만, 종교 이야기를 하기 위해 사람들을 쫓아다니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종교에 관심 있는 사람은 스스로 종교시설을 찾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 활동을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속 깊이 품은 신앙이라면, 자연스럽게 전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더 진실한 방법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소통은 강요가 아니라 배려로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알툰 하미데 큐브라 남서울대학교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