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경제야”라는 문구는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클린턴 진영이 고안한 선거전략 중 하나로 당시 미국이 겪고 있던 불황 문제를 꺼내면서 외부 유권자들에게도 활용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클린턴의 승리로 끝난 미국 대선 이후에도 ‘경제’라는 단어만 바꾼 채 계속돼서 활용되는 일종의 스노클론-널리 알려진 문구를 조금씩 바꿔 쓰는 것-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인 제러미 러프킨이 과거 국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가장 중요해질 세계적 이슈는 ‘기후변화’ 딱 한 가지”라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국내외적인 도전들의 배후에는 ‘기후변화’가 있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제 우리나라 경제의 미시적 또는 거시적 변화와 미래 전망을 위해서는 기후라는 변수를 반드시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 예로 2023년 겨울 강수량은 평년 대비 2.7배나 많은 비가 내렸고 강수일수도 31.1일이나 기록해 평균 3일에 한 번 비가 내려 겨울철 전체 일조량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 결과 전라남도에서는 양파 재배 면적의 20%가 피해를 입어 양파 출하가 줄어들었고 딸기, 수박, 참외, 멜론 등 시설 작물들의 작황이 좋지 않아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올해 봄철에 채소 및 과일 가격이 급등하였다. 더군다나 여름철의 역대급 더위가 9월까지 이어지면서 준고랭지 배추 생산이 줄어들어 배추와 무 등의 채소 가격의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의 농산물 가격뿐만 아니라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상·기후 현상의 발생 빈도 증가로 인해 경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는 다양한 원재료 생산량의 급감으로 농산물뿐만 아니라 각종 식품 가격 또한 심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 참고로 유엔 세계식량계획 등이 발간한 ‘2024 세계 식량 위기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2023년에는 18개국 7700만명이 극심한 식량 불안에 시달렸다고 한다.
기후 문제는 비단 1차 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현재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은 전 지구 평균기온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섭씨 1.5∼2도로 억제하기 위해 ‘탄소 중립 경제’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탄소 중립 경제는 다양한 에너지 및 산업 부문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한 예로 미국에서는 소위 ‘청정경쟁법’이 2025년부터 시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청정경쟁법이 시행되면 미국에 수입되는 철강, 알루미늄, 화학제품, 유리, 종이 등 12개 제품에 대해 미국의 탄소집약도 기준을 초과하는 배출량에 톤당 55달러(약 7만원)의 부담금을 부과한다고 한다. 부담금은 매년 5%씩 상승해 2030년에는 톤당 90달러(약 12만원)가 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제조업체의 탄소 발생량이 미국보다 높아 부담금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또한 2026년부터 ‘탄소 국경 조정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할 예정인데 철강·알루미늄·비료·전기·시멘트·수소제품 등 6개 품목을 유럽연합으로 수출하는 경우, 제품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 배출량을 추정해 유럽연합의 기준 초과량만큼의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이다. 우리나라는 이 제품들에 대한 탄소 배출량이 유럽보다 높기 때문에 역시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의 ‘청정경쟁법’이나 유럽의 ‘탄소 국경 조정제도’ 모두 전 지구 평균온도를 억제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즉 지구온난화를 억제하기 위한 기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기후 과학계의 연구 결과들은 지구온난화 억제를 위해서 현재 각국에서 제안한 온실가스 배출량보다 훨씬 많은 양의 배출량을 감축해야 전 지구 평균온도를 1.5∼2도 이하로 억제할 수 있으며 실제적인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망 결과들은 미국과 유럽의 ‘청정경쟁법’ 및 ‘탄소 국경 조정제도’의 기준이 더욱 강화되고 확장될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나라 경제에 미칠 영향은 더욱 심대해질 것이다. 향후 몇 년은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를 결정할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문제는 기후다.
예상욱 한양대 ERICA 교수·기후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