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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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韓은 머니 머신”… 방위비 9배 인상 언급

분담금 1.5조→13조원 요구
재선 성공 땐 ‘재협상’ 시사
외교부 “SMA, 합리적 결과”

北문제 등 ‘트럼프 리스크’ 우려
“당초 50억弗 요구, 바이든 뒤집어”

11월 미국 대선의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머니 머신(부유한 나라)”으로 지칭하며 자신이 재임하면 주한미군 주둔비용(방위비 분담금)으로 연간 100억달러(약 13조원)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박빙의 경쟁을 펼치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이달 초 타결된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의 재협상을 요구하는 등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카고 경제클럽 대담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시카고 경제클럽’ 주최 대담에서 자신이 재임하면 주한미군 주둔비용으로 연간 100억달러(약 13조원)를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카고=AFP연합뉴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시카고에서 열린 ‘시카고 경제클럽’ 주최 대담에서 “내가 거기(백악관)에 있으면 그들(한국)은 (방위비 분담금으로) 연간 100억달러를 지출할 것”이라며 “그들은 머니 머신”이라고 말했다. 미 대선을 앞두고 한·미는 이달 초 2026년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도 대비 8.3% 인상한 1조5192억원으로 정하고 2030년까지 매년 분담금을 올릴 때 소비자물가지수(CPI) 증가율을 반영키로 하는 등 일찌감치 제12차 SMA 협상을 타결했다. 이를 두고 한국 정부와 조 바이든 행정부 간 트럼프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조기 협상 타결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은 그가 재선하면 한국에 재협상 요구를 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9년 재임 당시 분담금 수준으로 ‘적어도 빌리언(10억달러)’을 처음 제시해 파장을 일으켰다. 이날 그가 말한 100억달러는 당시 말한 ‘빌리언’의 열 배다. 그간의 국방비나 물가 인상분을 반영해 올해 체결된 방위비 분담액과 비교해서도 9배 가까운 수치다. 하지만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언급한 100억달러가 어떤 계산을 통해 나온 수치인지, 트럼프 1기에서 방위비 분담에 포함될 것으로 거론된 미 전략자산 전개 비용 등을 포함한 것인지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외교부는 이날 입장문에서 “이달 초 한·미 양국은 건설적인 협의를 통해 상호 수용 가능한 합리적인 결과 도출을 위해 노력, 제12차 SMA를 타결했다”며 “12차 SMA 협정을 연내 발효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미 정치 상황 변화와 무관하게 한·미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 15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북한의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폭파 관련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뉴스1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대담에서 재임 시 한국에 50억달러의 연간 방위비 분담금을 처음에 요구했으나 한국이 난색을 표해서 일단 20억달러를 내게 하고 그다음 해에 다시 50억달러로 만들려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21년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이를 다 뒤집었다면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는 한국을 사랑하고, 그들은 멋진 사람들이며 극도로 야심 찬 사람들”이라며 “우리는 그들을 북한으로부터 보호한다. 나는 그들과 매우 잘 지냈는데 그들은 아무것도 내지 않았다. 이것은 미친 일”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주미한국대사관 국정감사에서 조현동 주미대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 재선 시 SMA 재협상 요구 가능성과 관련해 “의회 비준 동의를 받지 않는 미국이 대통령 권한에 따라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못한다”면서도 “어떤 상황이 와도 이번에 합의된 합리적 수준을 바탕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대담에서 북한이 경의선 및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의 일부 구간을 폭파한 사실을 언급하며 “한국이 지금 러시아와 북한 그리고 여러 나라로부터 단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말했다. 북한을 경유하는 중국, 러시아와의 육로 왕래는 그의 재임 당시 비핵화 협상이 성공했을 경우의 목표로 언급되곤 했는데 마치 현재 이뤄지고 있는 일처럼 잘못 말한 것이다. 그는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글을 따로 올려 북한의 남북 연결도로 폭파를 언급하고서 “오직 트럼프가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워싱턴 조야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 재선 시 방위비 분담, 북한 문제뿐만 아니라 관세 인상,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기 등 각 분야에서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준비 없이 맞았던 트럼프 1기와 달리 정부 각계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측과의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있으며, 미 의회와의 접촉 증가를 통해서도 여러 위험 요인에 꾸준히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참모본부는 15일 북한이 경의선 및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한 모습이 담긴 우리 측 CCTV 영상을 공개했다. 우리 군은 이에 대한 대응사격을 실시했다. 사진은 북한이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하는 모습. 합참 제공

트럼프 측 인사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동맹을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발신하고 있다. 이날 출간된 워싱턴포스트(WP) 부편집인 밥 우드워드의 신간 ‘전쟁’(War)은 트럼프 전 대통령 측 인사인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과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조 대사와 만났으며, 이들이 “트럼프가 이번엔 더 합리적이고 더 예측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책에 따르면 이들은 조 대사에게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미 관계가 상호 방위를 위해 중요하며 양국이 여러 과제를 함께 짊어지고 있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워싱턴=홍주형 특파원, 정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