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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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의얇은소설] 종이비행기를 날리다

죽음이 묻힌 땅을 딛고 서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어머니
삶을 지탱하는 노력은 소중해

코이께 마사요 ‘언덕 무리’(‘파도를 기다리다’에 수록, 한성례 옮김, 창비)

얼마 전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무슨 토론 끝엔가 이런 질문을 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평소에 어떤 행동을 할까요? 그러자 강의실에 침묵이 흘렀고 나는 그 깊은 침묵 속에 학생들을 그대로 놓아두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아도 오래 생각해보게 하고 싶어서. 머뭇거리다가 한 학생이 말을 꺼냈다. 걷는다고, 매일 한 시간씩. 다른 학생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노래를 듣는다고, 일기를 쓴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고, 밥을 지어 먹는다고.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생기 같은 게 공기 중에 스미는 느낌이 들었다. 수업 후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는데 문득 언덕에서 혼자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사람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조경란 소설가

‘나’는 오래돼 군데군데 외벽이 떨어져 나간 낡은 아파트에서 외국인 남편과 아들과 살았다. 그런데 요즘은 혼자가 되었다. 먼저 집을 떠난 사람은 남편이었다. 아들을 낳은 얼마 후부터 우울증과 불안신경증을 겪게 되어 마음을 닫아버렸다. 미국의 시어머니가 만들어주었던, 너무나 달아서 먹기 힘들었던 피칸 파이를 남편은 그리워했고 나는 “피칸 파이만이 그를 구해줄 수 있으리라는 느낌이” 들어서 그를 미국으로 보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된 내성적인 아들 미즈오가 어느 날 결석했다는 담임의 전화를 받는다. 학교에 가지 않은 아들은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냈을까.

어릴 적부터 미즈오는 전철을 타고 역마다 내려서 기념 도장을 찍기를 좋아했다. 역마다 그 지역의 특성이 담긴 경치가 새겨진 전철역의 기념 도장을, 노트에 찍기 전에 도장 사이에 낀 찌꺼기를 파내고 닦아내 깔끔하게 찍는 것을. 그 일에 성취감을 느끼는 아이였다. 학교에 가지 않은 걸 들킨 날 미즈오는 기념 도장을 찍은 노트를 보여주었다. 그 도장은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을 떠올리게 했다. 인사과에서 매일 여러 가지 종류의 도장을 서류에 찍어야 하는데 도장을 찍을 때면 전철역에서의 미즈오처럼 한순간 숨을 멈추고 정성을 들여 깔끔하게 찍으려고 한다.

미즈오가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아들을 기다리며 집 정리를 하다가 남편이 만들어 놓고 간 종이비행기가 든 봉투들을 발견한다. 세금 고지서, 신문지 등 각종 종이로 비행기를 접고 날리기가 남편의 취미였다. 우울감이 심해지는 날이면 온종일 비행기를 접고 집 근처 언덕으로 가 날리곤 했다. 이제 나는 접는 방법이 복잡하고 끄트머리가 유난히 날카로운 종이비행기를 들고 언덕에 오른다. 자신의 아파트가 정면으로 낯설게 보인다. 아무도 없는 집, 외로운 집. 남편은 어떤 마음으로 이 언덕에 서서 해 질 녘까지 종이비행기를 날리곤 했을까.

나는 바람 속으로 찌르듯이 종이비행기를 던진다. 그것은 “의지를 지닌 생물체인 양” 똑바로 멀리, 아주 멀리까지 날아간다. 이상한 쾌감이 느껴진다. 종이비행기가 가득 든 봉투를 들고 언덕에 올라 날리는 일이 버릇처럼 돼 버렸다. 미즈오와 같은 또래인 이웃집 아이와 같이 날리는 날도 생겼고 봉긋하게 솟은 여기가 언덕이 아니라 고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죽음이 묻힌 땅 위에 서서 미즈오를 기다리며 “날아가는 도중에 목숨이 늘어난 것처럼 점점 더 멀리 날아가는” 종이비행기를 날린다. 마음이 후련해지고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걸 느끼며.

소설가이자 시인이 쓴 이 단편에서 가장 오랫동안 남는 건 하나의 이미지일지 모른다. 저녁 언덕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한 사람의 간절한 몸짓. 종이비행기는 더 살아보려는 나의 의지와 소망을 담고 팽팽하고도 생생한 호를 그리며 멀리 날아간다. 그 뾰족한 끝으로 생의 미묘한 불안을 찌르듯이, 뚫고 밀치며 나아가듯이.

마음을 담아서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회사에서 도장을 찍고 걷고 먹고 일기를 쓰고 말한다. 가끔 잊어버린 듯해도, 그렇게 하루하루를 건너는 자기만의 방법에 대해 더 듣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