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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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북향의 사람

고독하게 자신과 마주할 자유
작가에겐 너무나 소중한 순간
세계의 관심이 집필에 영향 줄라
작가 한강을 향해 행복한 걱정이…

북향 방에 살기를 자처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온종일 어두운 방, 바깥세상에 눈이 내렸는지, 햇빛이 돌아왔는지, 잿빛인 채 저물었는지 끝내 알지 못하여 일기에 날씨는 기록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밝은 방에서 살던 일은 기억나지 않고 돌아갈 마음도 없는 그 사람은 어떤 빛을 가진 사람일까?

하버브리지가 훤히 보이는 호텔 방에서 나는 고통스러웠다. 지난달 하순, 시드니한국문학회의 시상식과 특강 후, 단체여행하는 기간이었는데 하루는 몹시 앓으며 쓰러져 있었다. 환상적인 뷰나 풍요로운 식사가 아무 소용없었다. 며칠간 단체로 바삐 움직이다 보니 책 읽을 시간이나 글 쓸 짬이 전혀 없었다. 챙겨간 시집 원고가 가방에서 고기처럼 썩는 냄새를 풍겼다. 작업할 시공간이 온전히 박탈된 나날을 며칠이나 견딜 수 있을까? 아무것도 쓰지 못할지라도, 혼자 책상 앞에 있을 수 있는 몇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작가는 일상을 버텨가는 게 아닐까? 작가라는 존재는 조용히 쓸 수 있는, 고독하게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그 자유가 무엇보다 절실해서 마냥 밝고 즐거운 방에서 황급히 벗어나 북향 방으로 가는 것이다.

김이듬 시인

“나는 조용히 있고 싶다. 세계에 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는 좀 더 조용하게 있어야 한다”고 한강 작가는 말했다고 한다. 그는 현재 집필 중인 소설을 빨리 끝내고 노벨상 수락 연설문 작성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노벨상 공식 기자 회견 요청에 대한 답변일 것이다. 우리는 한강 작가의 선택을 존중한다. 무엇보다 ‘현재 집필 중인 소설’을 읽게 될 기대감에 기분이 좋아진다. 이미 한강 작가는 놀라움과 기쁨, 감동의 시간을 통과했을지도 모르겠다. 매일 시집 한 권, 소설책 한 권을 읽고 자신의 원고 분량을 채워가는 일상으로 돌아갔으리라. 하지만 한 가지 루틴은 실행하지 못하고 있을 것 같아서 조금 안타깝다. 한강 작가는 글 쓰는 몸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루 한두 시간은 산책한다고 했는데, 독자들의 환호성에 문밖으로 나서기도 쉽지 않을 텐데, 늦은 저녁에 모자 쓰고 나가서라도 건강을 다졌으면 좋겠다.

10월10일을 국경일로 지정해야 한다며 흥분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날은 올해 최고 환희의 날이었다. “한강 작가님,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그날 밤 우리끼리 축배를 들었다. 나와 내 친구 작가들은 오래전부터 한강 작가의 작품을 사랑했다. 해외문학행사에 가면 한강 작품에 대한 호감도가 너무나 높아서 놀란 적이 많다. 한강 작가뿐만 아니라 수많은 한국 작가의 이름을 읊어대는 외국 독자들도 있었다. 외국 작가들 사이에는 곧 한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거라는 예견이 우세했다. 산속에서는 산이 안 보이는 것처럼 오히려 국내에서 한국 문학의 우수성과 파급력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한강 작가의 문체를 두고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하는데, 실제로 그는 탁월한 시인이기도 하다. 조만간 두 번째 시집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는 최근 문예지 ‘문학과 사회’(2024년 가을호)에 시 두 편을 발표했다. 그중 ‘북향 방’을 소개한다.

봄부터 북향 방에서 살았다/ 처음엔 외출할 때마다 놀랐다/ 이렇게 밝은 날이었구나/ 겨울까지 익혀왔다/ 이 방에서 지내는 법을// 북향 창 블라인드를 오히려 내리고/ 책상 위 스탠드만 켠다// 차츰 동공이 열리면 눈이 부시다/ 약간의 광선에도// 눈이 내렸는지 알지 못한다/ 햇빛이 돌아왔는지 끝내/ 잿빛인 채 저물었는지// 어둠에 단어들이 녹지 않게/ 조금씩 사전을 읽는다// 투명한 잉크로 일기를 쓰면 책상에 스며들지 않는다/ 날씨는 기록하지 않는다// 밝은 방에서 사는 일은 어땠던가/ 기억나지 않고/ 돌아갈 마음도 없다// 북향의 사람이 되었으니까// 빛이 변하지 않는

 

김이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