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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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우리] 아세안의 미래는 밝다

2023년 GDP 세계 5위 규모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
韓·아세안 포괄적 전략동반자
경제·안보서 독보적 관계 구축

왜 어떤 나라는 부자가 되고 어떤 나라는 그렇지 못한 걸까?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론 아제모을루는 경제 성장의 경로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으로 제도를 지목했다. 그리고 포용적 민주제도와 시장경제가 국가의 번영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라고 설명했다. 2022년 한국을 찾은 아제모을루는 그 예시로서 남한과 북한의 야경 사진을 보여주며 “정치 체제의 차이가 경제 격차로 이어졌다”는 자신의 테제를 확인했다.

하지만 아제모을루가 말하는 제도가 민주주의나 시장경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제도가 포괄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여부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는 특정한 체제나 제도 보유 여부를 떠나 실제 적용과 운용의 질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즉, 민주주의이거나 시장경제라는 제도 자체가 경제 성장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며, 역으로 그렇지 않더라도 효율적인 운영 여부에 따라 성장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최윤정 세종연구소 부소장

여기에 부합하는 사례를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세안 10개 회원국 중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정도가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한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 나머지 국가들은 권위주의적 요소가 강하거나 비민주적인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치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권 중 하나로 꼽힌다. 개별 회원국 차원에서는 경제 성장을 열망하는 젊은 인구와 정부가 힘을 합하고, 회원국 간에는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하려는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2023년 아세안의 국내총생산(GDP)은 3조8100억달러로 세계 5위 규모다. 2024년에 이어 2025년에도 아세안의 경제성장률은 4.2%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이는 세계 평균을 크게 넘어선다. 아세안의 성장 가능성에 매료된 자금이 쏟아져 들어와 2023년 아세안으로 유입된 해외직접투자액은 2240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전 세계 해외직접투자(FDI)의 17%로 단연 최대 규모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세안은 특유의 중립성과 유연한 외교 전략으로 강대국 간의 긴장 속에서도 역내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0월11일 아세안 정상회의의 일환으로 개최된 동아시아정상회의에는 미국 국무장관 앤서니 블링컨,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 중국 외교장관 왕이가 한 테이블에 앉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전략 경쟁 속에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들을 같은 공간으로 불러낸 장면을 상기하면서 까으 끔 후은 아세안 사무총장은 이것이 아세안의 힘이라고 강조하였다. 아세안 개별 회원국 차원에서는 고유한 정치제도 안에서, 아세안 차원에서는 각 회원국 간의 합의에 기반을 둔 아세안 특색의 제도화를 통해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아세안은 아세안만의 방식으로 점진적 제도화와 합의 기반 전통을 통해 꾸준히 발전해 왔다. 이러한 아세안 고유의 발전 모델은 서구 학자들의 설명만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독특한 가치를 지니며, 앞으로도 세계 경제와 정치의 발전 경로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가 될 것이다.

최근 아세안 정상회의 계기에 한국과 아세안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양국 관계를 격상시켰다. 한국은 아세안의 11개 대화 상대국 중에서 다섯 번째로 포괄적 전략 동반자가 되었다. 나아가 한국은 다른 국가들을 넘어서는 특별한 연대감을 통해 한·아세안 관계를 독보적인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다. 아제모을루와 공동 수상한 제임스 로빈슨도 인정한 한국의 성공적인 경제발전 모델은 아세안에도 깊은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최윤정 세종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