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후임 인선이 늦어지는 가운데 이종석(사진)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 3명이 17일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이 소장은 “헌재가 위기 상황에 있다”면서 “사법의 정치화를 경계하고, 재판의 독립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재판관은 이날 헌재에서 퇴임식을 가졌다. 이 소장은 지난해 12월 취임해 약 10개월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게 됐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른 재판관의 임기는 6년인데, 재판소장은 재판관 중에서 정하게 돼 있어 재판관 임기가 종료되면 소장직에서도 퇴임하게 된다.
이 소장은 이날 퇴임사에서 “최근 몇 년 사이 권한쟁의심판, 탄핵심판과 같은 유형의 심판사건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며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나타나면 뒤이어 사법의 정치화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는 헌재 결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해 헌재 권위가 추락하고, 민주주의 질서를 해칠 것이 분명하다”며 “헌재 가족 모두 마음가짐과 의지를 굳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 재판관 후임은 국회 추천 몫이지만 여야가 합의를 이루지 못해 선출되지 않은 상태다. 각각 몇 명의 후보를 추천할지에 대해서도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대로라면 심판정족수(7명)에 미달해 헌재가 ‘마비 상태’가 될 처지였다. 하지만 ‘심리정족수’를 규정한 헌재법 조항에 대해 헌재가 14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당장은 심리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
다만 이번 가처분은 ‘의결정족수’에 대한 것은 아니라 법률의 위헌이나 탄핵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재판관 6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남은 재판관 6명의 의견이 만장일치로 모여도 결정에 대한 정당성이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
헌재도 가처분 결정문에서 “재판관 6명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경우에는 공석인 재판관의 임명을 기다려 결정하면 된다”며 “신속한 결정을 위해 후임 재판관이 임명되기 전에 쟁점을 정리하고 증거조사를 하는 등 사건을 성숙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 소장의 연임 가능성도 점쳐진다. 헌법은 헌법재판관의 연임을 허용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장의 연임도 가능하다는 게 대체적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