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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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로 열어준 ‘불법 생숙’…풀어야 할 과제도

정부가 주거용으로 불법 사용되는 생활형 숙박시설(생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규제 완화에 착수하자 관련 부동산·건설업계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생숙 소유주의 퇴로를 열어준 것은 물론, 수분양자와 시공사 간 갈등과 그로 인해 발생해 온 문제들을 줄일 수 있는 데다 향후 주거·임대차시장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법을 지켜온 준법 생숙 소유자와의 형평성 문제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거론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8일 국토교통부의 ‘생활숙박시설 합법 사용 지원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생숙의 오피스텔 용도 변경과 숙박업 신고를 위한 요건을 완화할 방침이다. 주거용으로 불법 사용될 수 있는 생숙이 11만실에 달하자 규제를 풀어 합법화 유도에 나선 것이다. 당초 생숙은 2012년 외국인 관광객 장기체류 수요에 대응해 취사 가능한 숙박시설로 도입됐으나, 부동산 경기가 과열된 2020년을 전후로 편법 주거상품으로 오용되며 수요가 몰렸다.

 

대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오피스텔로의 용도변경 시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하기로 한 부분이다. 국토부는 “그간 획일적 규제로 복도 폭, 주차장 등 건축기준 충족이 어려워 사실상 용도변경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었다”며 “앞으로는 안전, 주거환경 보호 등 당초 입법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보다 현실적이고 유연한 규제 방식이 도입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피스텔로의 용도변경을 위한 기준 완화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생숙 투기 조짐이 나타난 2021년 국토부는 ‘생숙 불법전용 방지대책’을 내놓으면서 기존 생숙을 주거가 가능한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하는 길을 일부 열어줬다.

 

2021년 10월부터 2년간 바닥 난방과 발코니 등 건축기준을 한시적으로 완화했고, 이행강제금 부과를 유예했다. 그러나 생숙 소유주들은 정부가 부여한 특례로는 오피스텔 용도변경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비쳐왔다.

 

생숙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소유자와 부동산·건설업계는 정부의 이번 발표로 한숨 돌린 모습이다. 용도변경 시 생숙 사업자와 수분양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다소 늘어나긴 하지만, 합법화를 통해 분양계약취소소송, 손해배상청구소송 등이 해결되면 장기적으로는 비용이 줄고 사업자와 수분양자 간 갈등 봉합도 기대할 수 있다. 그간 건설업계에서는 생숙을 주거 목적으로 분양받은 수분양자와 건설사 간 계약해제 소송이 잇따르면서 리스크가 가중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 바 있다.

 

한승구 건협 회장은 “국토부의 지원 방안을 통해 생활숙박시설 수분양자들이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림에 따라 불필요한 갈등 비용 최소화와 함께 도심 내 단기 주택공급 확대로까지 이어져 정부가 추진 중인 주택공급 활성화에도 일조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부동산개발협회도 “생숙에 대한 불법 낙인이 벗겨지고, 수분양자·공급자 사이 갈등과 잔금 대출 및 PF(프로젝트파이낸싱) 상환 어려움이 개선될 것”이라며 “여건별로 숙박 및 주거 활용이 가능해짐에 따라 전체 주거 시장, 임대차시장에도 순기능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오피스텔로의 용도변경 시 적정 기부채납 또는 비용 부담을 유도하기로 했으나 형평성은 여전히 고려해야 할 문제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이번 특례를 통해 오피스텔로 용도를 전환할 수분양자는 임대와 실거주 등 미래 사용 가치가 올라가는 만큼 그에 상응해 일정 기간 전매규제 페널티를 도입할 필요도 있다”며 “이미 용도변경과 숙박업 신고를 한 생숙업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추후 논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기회에 생숙 제도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조치에 따르면 개인이 1개 호실을 매입해서 생숙의 본래 용도인 숙박업으로 사용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며 “기존 호텔 이외의 관광 등 단기 숙박시설을 확충·도입하겠다는 (생숙의 도입) 방침이 지금 체계에서 충분히 구현될 수 있을지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관련 제도의 보완이나 폐지까지도 반영하는 등 생숙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