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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방공망 ‘눈 뜬 장님’ 만드는 첨단 전자전기 개발한다 [박수찬의 軍]

공군의 숙원 사업 중 하나로 꼽혔던 전자전기 사업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해 4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전자전기 사업추진기본전략을 심의·의결했다. 

한국 공군이 운용중인 백두 전자정찰기. 세계일보 자료사진

전자전기 사업은 유사시 북한 방공망과 무선지휘통신체계를 마비시켜 공군 전투기의 생존률을 높이면서 주변국 신호정보를 수집하는 역할도 맡는다.

 

전자전기가 실전배치되면, 북한군 방공망 위협 밖에서 원거리 전자전을 감행해 북한 레이더와 통신체계를 마비시킬 수 있다. 중국·일본 등 주변국의 전자전에 맞대응하면서 신호정보를 수집할 전력을 확보하는 효과도 있다.

 

국내 개발로 진행될 전자전기 사업에 대한 국내외 방위산업체의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KF-21 양산과 한국형미사일방어(KAMD)를 제외하면 국내 개발 및 생산 방식으로 이뤄질 공군 관련 사업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과 물밑 움직임이 활발할 전망이다.

 

◆현대전 필수 장비, 전자전기

 

세계 곳곳에서 운용되고 있는 전자전기는 현대전에서 필수적인 장비다.

 

레이더는 전파를 공중에 방사해 물체에 맞고 돌아오는 반사파를 수신하여 표적의 위치와 고도 정보 등을 계산한다. 

 

각각의 레이더는 고유의 주파수 대역을 갖고 있다.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주파수 대역이나 출력이 달라진다. 

 

이때 레이더 전파 특성을 알고 있다면, 이와 유사한 방해전파를 쏴서 레이더를 교란한다.

중국 공군이 운용중인 Y-9G 전자전기. 세계일보 자료사진

레이더는 자신에게 수신된 데이터 중에서 어떤 것이 진짜인지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레이더 스크린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채 무용지물이 된다.

 

전자전기는 이같은 전파교란 임무를 공중에서 수행한다. 레이더와 통신 주파수를 포함한 신호정보 수집과 전자전 공격 임무를 주로 수행한다.

 

적군의 통신·레이더 신호를 탐지·식별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전자공격을 감행해 전파 교란을 실시, 아군 전투기를 보호한다.

 

전자전기는 원격지원 전파방해 항공기와 호위지원 전파방해 항공기로 구분된다.

 

원격지원 전자전기는 적 방공망 교전범위 밖에서 다수의 레이더 주파수와 통신 정보를 모은다.

 

이후 고출력 전파방해를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해 아군 전투기를 돕는다. 수송기나 비즈니스 제트기를 플랫폼으로 쓴다.

 

호위지원 전자전기는 아군 전투기 편대와 함께 비행하면서 적 레이더를 교란한다. 전투기를 개조한 형태다.

 

두 종류의 전자전기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다. 두 기종을 함께 운용하면 전파방해가 미치지 못하는 범위를 최대한 줄이면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전투기 조종사들의 상황인식 능력을 높이고, 임무 수행에 유용한 전략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도 가능하다.

미 공군의 신형 전자전기 EA-37B 앞에서 미 공군 수뇌부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최근 전자전 경쟁의 핵심은 적의 위협을 얼마나 신속하게 분석·대응하느냐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은 한 달 미만의 주기로 전자전 관련 소프트웨어와 전술을 업데이트하면서 치열한 전자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보다 훨씬 우수한 기술과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다.

 

유사시 충돌 강도도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양측이 전자전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은 인력과 예산 투자를 늘리면서 전자전 능력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

 

중국 공군과 해군 항공대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통과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이를 한국 공군이 견제하는데 영향을 받을 정도다.

 

중국은 적군의 통신과 레이더를 교란할 수 있는 전자전 능력을 갖춘 J-16D를 투입하고 있다.

 

지난 2021년 10월 주하이 에어쇼에서 모습을 드러낸 J-16D는 기존 J-16 전투기에 전자 정찰, 통신 교란, 레이더 교란 장치 등을 추가해 전자전 공격능력을 갖췄다.

 

적군 전파를 탐지, 전자정찰기가 기존에 수집·분석한 정보와 비교해 전파의 특성과 진원지를 파악한다. 

미 해군 EA-18G 전자전기가 핵항모 니미츠호 갑판에 접근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이후 교란 장치를 가동해 적의 레이더나 통신체계를 마비시키거나 대레이더 미사일로 직접 파괴한다.

 

실전 상황에서 J-16D가 J-20 스텔스 전투기나 전략폭격기와 함께 움직이면서 전파방해에 나선다면 중국의 공중전 능력은 한층 강해질 전망이다.

 

중국은 Y-9G 전자전기도 운용하고 있다. 중국과 인접한 동중국해나 남중국해 일대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Y-9 수송기에 전자전 장비를 탑재한 것으로 알려진 Y-9G의 구체적인 성능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신호정보 수집과 전파방해 기능을 갖췄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EA-37B 캠퍼스 콜(Campus call) 전자전기를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C-130 수송기를 개조했던 기존의 EC-130H를 걸프스트림 G550 비즈니스 제트기로 교체하고, 탑재하는 전자전 장비 중량을 8.1t에서 3.6t으로 줄이면서도 작전 능력은 대폭 끌어올렸다.

 

미 해군이 현재 운용중인 EA-18G 그라울러(Growler)는 F-18 전투기를 전자전기로 개조한 것이다.

 

최첨단 전파방해장비와 광대역 수신기를 활용해 반경 400㎞의 전자적 신호를 무력화한다. 대레이더 미사일로 지상 레이더를 직접 제거할 수 있다.

 

아군 전투기 편대의 전술을 결정할 수 있는 수준의 공중전술통제 능력도 갖춰서 스텔스기보다 전술적 중요성이 더 크다는 평가도 받는다.

대한항공이 제안하는 한국형 전자전기 모형. 비즈니스 제트기에 국산 전자전 장비를 채운 형태다. 박수찬 기자

◆한국도 전자전기 확보 나서

 

한국 공군도 미국과의 연합훈련 등을 통해 전자전기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F-35A 스텔스 전투기 도입 등이 먼저 이뤄지면서 전자전기는 미군에 의존해왔다. 그러다가 지난해에 사업추진기본전략이 의결되면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4대를 제작할 전자전기 사업은 내년쯤 사업공고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탑재 장비는 국내 방위산업체가 제작하고, 항공기 기체는 해외에서 도입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100%에 가까운 국산화율을 달성할 전망이다. 

 

외국 기체에 국산 전자장비를 통합하는 것은 백두 전자정찰기 개발 방식과 유사하다.

 

백두 전자정찰기도 팰콘2000LXS에 국내 방위산업체인 한화시스템과 LIG넥스원이 만든 전자·통신·계기정보 수집 장비를 통합하는 방식이었다. 

 

신형 전자전기의 전반적 형태는 전자전 장비를 비즈니스 제트기에 탑재한 미군 EA-37B와 유사할 전망이다. 프로펠러 비행기보다 더 높은 고도에서 오랜 시간 작전활동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전자전기 플랫폼으로는 걸프스트림 G550, 브라질 엠브라에르 E190-E2, 프랑스 닷소 팰콘2000LXS 등이 거론된다. 

 

G550은 EA-37B와 더불어 이스라엘 에이탐 조기경보통제기와 샤빗 전자전기 플랫폼으로도 쓰였다.

 

팰콘2000LXS는 한국군 백두 정찰기에 쓰이고 있다. 플랫폼을 공유함으로써 후속군수지원 효율을 높일 수 있다. 

한국 공군 백두 전자정찰기가 활주로에서 이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190-E2는 내부 공간이 넉넉해서 장비 추가 장착이 쉽고, 승무원 근무 및 휴식 여건도 충분히 보장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비행해야 하는 전자전기 특성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부 탑재장비 개발은 LIG넥스원이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LIG넥스원은 항공기 탑재 전자전장비인 ALQ-88K, ALQ-200을 생산했으며, KF-21 전투기에 탑재되는 통합전자전체계도 만들었다. 신호정보를 수집하는 백두 전자정찰기의 탑재장비 개발에도 참여했다.

 

새로 제작될 전자전기는 적군의 통신·레이더 전파 정보를 수집하고 원거리에서 전자전으로 무력화하는 기능을 갖추게 된다. 

 

적군의 전파 주파수를 수집하고 파악해야 전자전 공격 대상을 정할 수 있고, 전자전을 마친 후에 결과를 확인하려면 정보수집기능이 필요하다. 실시간 정보공유를 위한 데이터링크와 기체를 보호할 장비도 추가된다.

 

EA-18G처럼 KF-21을 전자전기로 개조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서 적 레이더와 통신체계 주파수를 신속하게 식별하고, 강력한 출력을 발휘해 전파방해를 하는 방식이다. 기본적으로는 EA-18G와 유사한 컨셉이다. 

 

전자전기 사업이 실현되면 전투기 전력 보호와 더불어 전자전 핵심기술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업의 신속한 전개가 불확실하다는 의견도 있다. 공군은 KF-21 양산, KF-21에 장착할 미티어 장거리 공대공미사일과 아이리스-티(IRIS-T) 단거리 공대공미사일을 비롯한 항공무장 구매를 진행해야 한다.

 

F-35A와 F-15K 성능개량, 조기경보통제기 2차 사업과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구축까지 감안하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셈이다.

 

공군이 현재 추진 중인 사업이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전자전기 사업이 조기에 진행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시각도 있어서 향후 사업 추진에 관심이 쏠린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