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가 충성한 북한 체제에서 제 동생은 (탈북한) 언니가 보내주는 돈이 죄가 돼서 맞아죽었습니다.“
탈북민 윤종순 씨의 흐느낌과 울부짖음에 장내가 숙연해졌다.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 건물에서 탈북민들이 참석해 북한 인권의 실태에 대해 증언하는 행사가 열렸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 줄리 터너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야마다 시게오 주미일본대사와 워싱턴의 국제 문제 관료, 북한 전문가, 언론인 등이 참석했다.
탈북민 윤 씨는 보위부 소속으로 북한 체제에 충성했던 공무원인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북한 체제가 얼마나 무서운지, 가난이 질병과 같은 것인지를 처음 알았다고 했다. 25살에 가난을 피해 중국으로 넘어갔던 그는 인신매매, 네살 딸과의 생이별, 세 차례의 북송을 거치며 수없이 인권침해를 당했다. 나체로 성추행에 가까운 심문을 당하는 일이 반복됐다. 2009년 네번째 탈북에 성공해 대한민국 땅에 왔을 때 그는 악착같이 돈을 벌어 동생들을 한국으로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막내 동생이 서른 네살에 두 살 아들을 남겨놓고 언니가 보내주는 돈이 죄가 돼 북한 당국에 의해 맞아 죽자 그는 또다시 좌절했다.
미국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시라큐스대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하는 저스틴 씨 역시 꿈을 키워가고 있는 현재와 달리 북한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참담했다. 2010년 14살의 나이에 김정일이 사용하는 도로를 만들기 위해 일정 구간을 돌로 메우는 작업에 동원됐다. 정해진 구간을 빨리 채우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큰 돌을 들려고 하다 돌에 손이 깔렸다. 병원에 가니 손가락 마디를 통째로 절단하자고 했다. 컴퓨터를 하고 싶었던 그는 선뜻 응할 수가 없었고, 며칠만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다른 의사에게 6개월간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뼈의 튀어나온 부분을 마취제도 없이 펜치로 절단해야 했다. 가족들이 탈북하자고 했을 때 그는 그 길을 택했다.
앞서 행사에 참석한 김 장관은 “오늘 우리가 들을 이야기들은 인간 존엄의 파괴에 대한 매우 가슴아픈 이야기들“이라며 “우리가 듣기에 매우 고통스럽고 어려울 수 있지만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진실”이라고 강조했다. 캠벨 부장관 역시 “(북한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정말 큰 용기와 개인적인 결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며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것은 정말 영광이며, 감사하다”고 밝혔다.
캠벨 부장관은 이어 일본 총선과 다가올 미국 대선을 언급하며 “이같은 이슈(북한인권)에 대한 공약은 근본적으로 초당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 북한 인권에 대한 미국 정부의 태도가 변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의식한 언급으로 보인다.
김 장관, 캠벨 부장관, 야마다 시게오 주미일본대사는 이날 앞서 국무부 청사에서 처음으로 한미일 북한인권회의를 열었다. 한미일 3국의 북한인권 공조를 위한 첫 회의다. 줄리 터너 북한인권특사, 조현동 주미대사도 참석했다. 김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지난해 8월 한미일 정상은 북한 인권을 증진하고 납북자 및 억류자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바 있다”며 “오늘 행사는 3국 협력과 행동을 통해 이러한 약속을 실현하는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