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경주 대릉원 주변 도로를 공사하던 중 신라의 옛 무덤들이 잇달아 발견됐다. 그중에서 ‘계림로 14호분’에서는 기존의 유물과는 확연하게 다른 형태의 칼 한 자루가 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다. 화려한 금빛에 붉은 보석이 반짝이는 검, 이른바 ‘황금 보검’이다.
동·서양 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이 유물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영국박물관이 지난 9월 말 공개한 ‘실크로드’ 전시를 통해 영국에서 주목받고 있다.
경주 계림로 보검은 국내외 고고학계가 오랜 기간 주목해 온 유물이다. 이 검은 그동안 신라의 무덤에서 나온 칼과는 형태나 문양이 달라 누가, 언제, 어디에서 만들었는지 추정하기 어려웠다. 특히 검을 장식한 붉은색 보석은 석류석으로, 신라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었다. 카자흐스탄 보로보에에서 출토된 단검 장식, 신장위구르자치구 쿠차 지역의 키질석굴 69호 벽화 속 그림과 비슷하다는 의견이 많으나 완형이 남아있는 사례가 없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오랜 연구·조사 끝에 2010년에 낸 보고서에서 이 보검이 5세기에 제작됐으며, 중앙아시아의 집단이 동유럽 금세공 기술자에게 보검 주문을 의뢰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1500년 전 대외 교류의 상징인 셈이다.
영국박물관은 전시 초반부에서 계림로 보검을 소개한다. 영국박물관 측은 영국 서퍽 지역의 고대 앵글로·색슨 유적인 서턴 후(Sutton Hoo)에서 찾은 장식과 계림로 보검 장식이 비슷하다는 점에도 큰 관심을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시에서는 계림로 보검을 비롯해 총 8점의 신라 유물을 만날 수 있다.
보물 ‘천마총 유리잔’·‘경주 노서동 금목걸이’·‘감은사지 동 삼층석탑 사리장엄구’(내함 제외)를 비롯해 경주 용강동 무덤에서 1986년 출토된 인물상 등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영국박물관 측은 오랜 기간 전시를 준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동서로 이어지는 무역로를 넘어 동아시아에서 영국까지, 또 스칸디나비아에서 마다가스카르까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대륙을 잇는 실크로드의 의미에 주목하고자 국내외 29개 기관과 협력해 다양한 전시품을 선보인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유물은 신라의 수도를 뜻하는 ‘금성(金城)’ 부분에서 소개한다.
이현태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세계 여러 지역의 실크로드 관련 유물을 모은 전시”라며 “동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실크로드와 관련한 거점 도시를 따라 구성한 점이 돋보였다”고 전했다. 전시는 내년 2월23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