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심호섭의전쟁이야기] 총력전의 역설

총력전(Total War)은 단순한 군사력의 총동원을 넘어, 한 국가의 모든 인적·물적 자원을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투입하는 전쟁 또는 전쟁 수행 방식을 뜻한다. 19세기 나폴레옹 전쟁과 미국 남북전쟁에서 출현한 총력전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확고한 형태로 정립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절정에 다다랐다. 이후 6·25전쟁에서는 남북한 모두가, 베트남전쟁에서는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이, 중동전쟁에서는 이스라엘이 총력전을 수행했다. 현재 진행 중인 러·우전쟁도 특히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총력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총력전은 전쟁을 정치의 또 다른 연속으로 국가의 다양한 수단을 통해 적에게 내 의지를 강요하는 행위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명제에서 출발하며, 전쟁이 달성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표에 따라 국가의 모든 역량을 투입함을 의미한다. 제1, 2차 세계대전에서는 단순히 군대의 능력이 아닌 이러한 총력전 수행 능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 핵심 요소로 평가되었다.

총력전 수행을 호소하는 미국 공공사업진흥국 제2차 세계대전 포스터.

총력전 수행 능력과는 별개로, 해당 국가가 진정한 의미에서 총력전을 수행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남북전쟁의 북부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미국은 총력전 수행 능력에서는 우위를 보였지만, 상대국보다 인적·물적 자원의 동원 비율이 낮았기 때문에 그들이 상대적으로 더 철저한 총력전을 수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총력전은 처음부터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전략으로 계획된 것이 아니라, 전쟁이 장기화하고 소모전으로 전개되면서 불가피하게 국가 자원을 동원하게 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참모차장이었던 루덴도르프는 전후 저서 ‘총력전’에서 국민의 정신적 단결, 국가의 경제력, 지도자를 총력전 수행의 필수 요소로 강조하며, 군대가 총력전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군국주의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비판받았지만, 총력전이 단순한 현상이 아닌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현대에 이르러, 총력전은 국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승리를 쟁취해야 하는 상위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총력전은 장기전에만 필요한 전략이 아니다. 단기전에서도 그 중요성은 오히려 더 크다. 총력전의 핵심은 전쟁 초반에 최대의 힘을 집중해 최소한의 피해로 전쟁을 끝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국가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할 준비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준비된 총력전 역량은 전쟁을 억제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화 유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총력전을 준비하는 것이다. 총력전의 대비는 평화 유지의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화만을 생각하며 전쟁을 등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시점이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