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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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트럼프 2기를 대비하는 자세

트럼프 외교 기준은 ‘거래적 관계’
美 이익 위해선 北·러와도 대화
트럼프 재선 과도한 두려움 대신
韓 가치 높이는 현실적 대비 필요

11월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반도에 관심이 퍽 많다. 최근 시카고 경제클럽 주최 대담에서 그는 한국을 “머니머신”이라며 자신이 현직에 있다면 방위비 분담금으로 한국에 100억달러(약 13조원)를 받아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시감이 들었다. 2019∼2020년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방위비 협상이 진행되던 시절 그가 입을 열 때마다 한국 정부와 언론이 요동치던 때가 생각났다.

 

3주 뒤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미국 대통령이 되면 상대적으로 평온한 한·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미 정부와 관계된 일을 하는 모두의 바람인 것 같지만 현재 상황은 장밋빛 미래만을 기대할 순 없어 보인다.

홍주형 워싱턴특파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면 모든 것이 변할 것이다. 국내에선 일반적으로 우려를 하지만 은근슬쩍 기대도 없진 않은 것 같다. 최근 워싱턴을 방문한 한 국내 외교·안보통 인사는 “다들 자기 마음대로 생각한다. 보수는 트럼프가 들어오면 자체 핵무장에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진보는 북한과 대화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면 한반도를 가만두지는 않을 듯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 가장 달콤한 기억 중 하나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손을 잡고 판문점을 넘고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던 기억이라는 것은 그의 유세와 인터뷰 몇 번을 들어보면 당장 알 수 있다. 저것밖에 없나 싶을 정도로 그는 김 위원장과의 친분을 강조한다. 북한도 그의 재선을 염두에 둔 행동 계획을 짜고 있을 것이다. 북·러 공조로 든든한 뒷배를 만든 김 위원장이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이 받아낼 계획을 하고 있을 것은 물론이다. 격랑이 몰아칠 때 국내에서 저마다 아전인수 격으로 트럼프 2기를 재단하려 한다면 결과는 뻔할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냉철한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트럼프 참모들이 펴낸 ‘미국 국가안보에 대한 미국우선주의 접근법’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지낸 케이스 켈로그 전 중장은 트럼프식 외교를 ‘거래적 관계’(transactional relationships)로 정의한다. 안보건, 경제건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김 위원장 같은 권위주의 지도자와도 거래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 외교’라는 것이다. 대중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가치 외교’를 펴는 조 바이든 대통령보다 노골적이고 추구하는 바가 뚜렷하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참모들이 반복적으로 “미국우선주의 접근은 고립주의(isolationism)가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맹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한다는 뜻이다. 물론, 동맹이 거래할 가치가 있을 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싸울 대상이 많다. 그가 생각하기에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가들과도 싸워야 하고, ‘통상 불균형’에선 중국과 멕시코가 우선 공격 대상이다. 게다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된대도 임기는 4년으로 제한된다. 제한된 시간 속에 원하는 성과를 거두려면 그가 얻을 것이 많은 한국과는 대놓고 싸우려 할 것 같지 않다. 단, 한국이 ‘거래할’ 가치가 있는 한 말이다.

 

그러니 트럼프 전 대통령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것보단 우리도 주어진 상황에서 우리 이익이 무엇인지를 찾아 때에 맞게 대응하는 게 더 중요하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1기와 달리 한국 정부가 이번에는 트럼프계 인사들과 촘촘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해왔다는 얘기가 들린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자민당 부총재처럼 트럼프 전 대통령과 진한 ‘라포(rapport‧상호 간 신뢰 관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더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간 쌓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국과 그의 이익 간 교집합을 찾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3주 뒤 그가 정말 돌아온다면 얘기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트럼프 리스크’를 공유한다. 과도한 반응이나 두려움은 오히려 독이다. 우리 안의 단합이 무엇보다 중요할 텐데 그 점이 가장 우려된다.


홍주형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