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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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과 ‘혈맹’ 진화한 러… 유사시 한반도 군사개입 우려 커져

北, 러 우크라전 대규모 파병

특수부대 포함해 1만여명 투입설
사실 땐 北 역사상 최대 규모 파병
與野 “평화 위협” 규탄결의안 추진

“러, 北에 ‘안보우산’ 약속했을 수도
北·러 자동군사개입 조약 현실화”
“北, 러 지원에 군사력 증강” 우려도

북한이 우크라이나에 특수부대를 포함한 대규모 병력을 파병한 것으로 보임에 따라 한반도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와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던 북한이 무기 지원에 이어 대규모 지상군을 파병하며 한반도를 비롯한 국제적 수준에서의 안보환경이 새로운 분수령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러 관계가 혈맹으로 진전된다면 러시아도 북한에 단순한 무기 지원을 넘어 이른바 ‘안보 우산’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군의 개입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참전 북한군” 영상 텔레그램의 친러시아군 계정인 ‘파라팩스’(ParaPax)에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북한군이 러시아에서 훈련 중’이라며 올라온 영상. 파라팩스 텔레그램 캡처
韓위성 ‘러 함정, 청진항서 北병력 이송’ 포착 국가정보원이 북한이 8일부터 러시아 파병을 위해 특수부대 병력 이동을 시작했다고 밝히며 공개한 위성사진. 왼쪽 작은 사진은 정부가 운용하는 합성개구레이더(SAR) 탑재위성이 포착한 북한 병력을 수송하는 러시아 함정을 확대한 모습이다. 국가정보원 제공

북한이 실제 1만여명의 지상군을 파병한다면 북한 역사상 처음 있는 ‘대규모 파병’이다. 러시아 함정이 12일 청진항에서 북한 병력을 이송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우리 정부가 운용하는 합성개구레이더(SAR) 탑재 위성이 촬영한 것으로 파악됐다. SAR는 전자파를 지상 목표물에 쏜 뒤 반사돼 돌아오는 신호 데이터를 합성해 영상을 만드는 방식이어서 기상 조건과 관계없이 주·야간 촬영이 가능하다.

 

북한은 과거 베트남이나 이집트에 군사고문단 등을 파견한 적 있지만, 소규모에 그쳤다. 북한이 이번 파병을 결정한 것은 우선 러시아와 혈맹관계를 구축하려는 목적이 큰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써 북한의 생존을 위한 돌파구는 러시아뿐이어서다. 미국도 북한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있는 데다 중국은 북·중·러 협력에는 선을 긋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수해 등 민심 이반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파병을 통해 러시아와의 관계를 한층 강화하면서 국론을 결집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북한에 줄 반대급부에 주목하고 있다. 한반도 내 역학 구도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제전략연구실장은 20일 통화에서 “북한이 병력을 보내면서 단기적으로는 전쟁 수행능력이 약화할 수 있어도 러시아로부터 안보 우산을 약속받았을 가능성이 있고 장기적으로는 억제력이 강화될 수 있다”며 “한반도에 미국 전략자산이 전개되는 것처럼 러시아가 한반도에 핵 잠수함을 보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러가 확실한 ‘군사동맹임을 확인했고 한·미동맹의 통합억제(핵전력+재래식 전력)에 대응한 북·러의 억제라는 구도로 나아갈 수 있어 한반도 전략적 대치 구도에 심대한 변화가 올 것 같다”며 “러시아는 정찰위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기술, 핵 잠수함 건조 등 핵심기술의 원천기술을 제공해 북한 무기체계가 획기적으로 진전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병력 이동을 위해 러시아의 태평양 함대 소속 상륙함이 1990년 이후 처음 북한 청진, 함흥, 무수단 인근 해경에 진입함에 따라 향후 북·러 연합훈련 가능성도 높다고 평가했다.

 

이번 파병으로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군사 개입에 대한 확약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러가 6월 체결한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는 자동군사개입 조항이 있다. 조약 제4조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돼 있다.

 

러軍의 북한군 보급품 위한 한글 설문지 19일 우크라이나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공개한 러시아 파병 북한 군인을 위한 보급품 관련 한글 설문지. 북한을 지칭하는 용어와 북한식 표기인 ‘조선씩 크기’란 표현이 사용됐다. SPRAVDI 제공

우리 정부는 해당 자동개입조항에 ‘공화국(북한)과 러시아의 법에 준한다’는 전제가 달려 있다는 것에 주목해 왔다. 러시아 국내법에 준한다는 전제가 붙어 있는 만큼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가 국내법을 들어 자동개입조항을 실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식 효력이 발생하기 전인 조약이 이미 양측 최고지도자 의사에 따라 정치적으로 효과를 내는 상황이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군이 참전하고 있다는 것이 그 방증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에서 ‘제어장치’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이번 파병으로 인해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할 우려도 크다. 홍 실장은 “중국의 입장이 주목된다”며 “사전에 파병 사실을 알리고 양해를 구했는지, 구하지 않았다면 북·중 관계는 더욱 악화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의 파병이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위반이라고 나오면 중국의 부담이 커지고 미·중 관계를 고려해야 하므로 난처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여야는 북한의 병력 파견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김정은 독재정권의 야만적 행태를 규탄하는 국회 결의안을 채택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도 북한 규탄 결의안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18일 밝혔다.


구현모·김예진·배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