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천만 명 시대가 도래했다. 평균 수명도 2023년 약 84세에 이르러 이제 대부분의 한국인은 인생의 20년 정도를 노인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노인 중에서 혼자서는 생활하기 어려워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노인이 2023년에는 110만 명에 이르렀으며, 이들 중 약 20%는 치매, 뇌졸중 등과 같은 노인성 질환을 앓거나 상당한 심신장애가 있어 노인요양시설에서 돌봄서비스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노인요양시설에 거주하는 노인들은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며, 회복하기 어려운 질병을 앓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많은 노인이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관절염 등과 같은 만성질환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고 관리하기 위해 노인요양시설 거주자들은 여러 의료기관을 이용하면서 한꺼번에 많은 약을 복용하게 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노인요양시설 거주자가 1년 동안 이용한 의료기관은 평균 2.8개소였다. 또한 한 개의 처방전에 포함된 의약품 수는 평균 7.3개 정도였으며, 한 번에 10개 이상의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는 경우도 22%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외부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는 가족이 대신 약을 받아오는 경우가 많아, 불편을 줄이기 위해 장기 처방을 받는 일도 흔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여러 종류의 약을 장기간 복용하는 다제약물 복용자가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노인요양시설에 거주하는 노인들은 거동이 불편하여 활동량이 적다 보니 지역 사회에 거주하는 노인보다 노쇠해질 가능성이 크다. 신체 기능도 많이 약해져 약물의 흡수, 대사나 배설 능력이 저하되기 때문에 약물 간 상호작용에 민감하며, 약물 부작용도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 노인요양시설 거주자야말로 다제약물로 인한 상호작용이나 부작용이 가장 많이 발생할 수 있는 ‘고위험군’인 것이다. 또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노인코호트를 이용하여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노인요양시설 거주자 중에서 노인이 복용하는 경우에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한 의약품을 사용한 경우가 81.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전체적으로 복용하는 의약품에 대해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인요양시설 거주자들의 약물 부작용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고 필요한 약물을 안전하게 복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정책 방안이 수립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것이 전문가가 현재의 약물 복용 상황을 체계적이고 꼼꼼하게 점검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러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모두 모아서 중복은 없는지, 용량은 적절한지, 혹시 불필요한 약은 없는지, 또 부작용은 생기지 않았는지, 건강식품 복용은 필요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또한 요양시설 계약 의사와 협력하여 약물 검토 결과를 논의하고, 필요에 따라 약물을 조정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이러한 협력과 검토 과정을 통해서 노인요양시설에서 생길 수 있는 약물 관련 문제를 줄이거나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제약물 관리는 장기요양시설 거주자와 같은 노쇠한 노인의 건강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필수 장치인 만큼, 하루속히 장기요양시설에도 체계적인 약물 관리 시스템이 도입되기를 기대한다.
장선미 가천대학교 약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