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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60대 이상 ‘재창업지원’ 11% 고작… 노인복지 구멍 더 커진다 [심층기획-초고령사회 안착 걸림돌 '디지털 소외']

자영업자 재기 지원 ‘희망리턴패키지’
신청부터 선발까지 전과정이 전산화
디지털 약자 고령층 복지사각 불가피
폐업지원 사업 수혜자도 17%에 불과

신청 과정·서류 간소화 등 개선 시급
“선발 업체 대부분 90년대생이 주축
고령층 자영업자 쿼터 등 보완 필요”
경쟁 선발 형태의 절차도 도마 올라

“위층에서 미용실하는 아가씨가 알려줘서 폐업 지원을 신청했지 그렇지 않았으면 못했지.”

서울 도봉구에서 4년여간 분식집을 운영하다 최근 폐업 절차를 밟고 있는 A(75)씨는 이렇게 문을 닫는 과정에서 가슴 쓸어내리는 경험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직후 몰아닥친 경기침체로 손님이 뚝 끊기며 지금까지 그가 진 빚이 5000여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폐업 지원까지 못 받았다고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진다고 A씨는 말했다.

 

A씨는 “우리 같은 노인들, 특히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노인들은 복지 정보를 접하기가 어렵다”며 “설령 접한다고 하더라도 인터넷으로 신청하고 서류 만들고 이런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하소연했다.

‘폐업 자영업자 연간 100만명 시대’다. 이처럼 3고(高·고물가·고금리·고환율) 장기화에 쓰러지는 자영업자를 구제하고자 정부가 꺼내 든 재기 및 폐업 지원 사업인 ‘희망리턴패키지’(재창업지원, 폐업 지원, 경영개선지원, 재취업지원)에서 고령 자영업자가 소외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업 신청부터 선발, 선발 뒤 지원금 수급까지 전 과정이 전산화로 이뤄져 ‘디지털 약자’인 고령층이 ‘재기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시점인 만큼 고령층을 위한 보다 촘촘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재창업지원 사업, 60대 이상 ‘11%’ 남짓

21일 세계일보가 소상공인진흥공단으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희망리턴패키지 폐업 지원 사업의 혜택을 받은 60대 이상 자영업자의 비율은 16.8%에 불과했다. 이는 40대(29.4%) 수혜자의 절반 정도 수준이며, 30대(22.5%), 50대(25.7%)보다도 훨씬 적다.

60대 이상 수혜자 비중은 지난해 16.0%, 2022년 16.1%, 2021년 14.9%로 매해 사업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20대 다음으로 낮았다.

재창업지원 사업의 경우 더 상황이 좋지 않다. 8월 말 기준 60대 이상 수혜자는 단 11.7%에 불과했다. 수혜자가 가장 많은 40대(33.8%)의 3분의 1 수준이다. 경영개선 지원, 재취업지원 부문도 60대 이상 비중은 각각 15.4%, 16.8%에 그쳤다.

희망리턴패키지를 통해 올해 가게를 연 이모(52·남)씨는 “선발된 뒤 워크숍에 갔는데 60여명 중 제가 5번째 정도로 나이가 많았다”며 “그분들도 모두 자녀가 도와줘서 신청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는 전 연령층 중 60대 이상 자영업자 비중이 가장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의아한 결과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전체 자영업자 중 60대 이상 비중이 37.3%로 가장 컸으며, 50대(27.4%), 40대(20.3%), 30대(11.6%), 20대 이하(3.4%) 순이었다. 또 지난해 60대 이상이 사업주인 곳은 전년보다 4.4%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국세청 ‘연령별 사업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자영업자 중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13.7%에 달한다.

◆“디지털 약자 맞춤 교육 및 프로그램 필요”

고령층이 자영업자 지원 프로그램에 선발되기 어려운 배경에는 ‘디지털 소외’가 자리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1월 발표한 ‘2023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민 평균 디지털정보화 역량을 100%으로 볼 때 70대와 60대는 각각 30%, 61%로 가장 높은 20대(138%)에 한참 못 미친다. 키오스크 사용, 온라인 티케팅 등도 버거운 고령층에게 사업 지원, 필요한 서류 준비, 지원금 수급 등 프로그램의 전 과정에 디지털 활용 능력이 필수인 희망리턴패키지는 ‘그림의 떡’인 것이다.

지난해 희망리턴패키지 재창업지원 프로그램에 선발된 최정원(48·여)씨는 “저는 아직 40대인데도 혼자 하기 어려워 남편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하물며 60대 이상 분들이 스스로 하기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정부에서 신청 과정을 과도하게 까다롭게 만들었다. 지원금 지급 플랫폼인 ‘E나라 도움’이나 과도한 서류 요구 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쟁 선발 형태의 프로그램을 손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희망리턴패키지사업 관계자는 “희망리턴패키지 성공한 업체를 살펴봤는데 대부분이 90년대생들”이라며 “스마트폰조차 잘 다루지 못하는 노인들과 젊은 세대를 경쟁시키면 노인들이 이길 가능성은 너무 희박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디지털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고령층 자영업자 쿼터를 두든지, 아니면 고령층을 위한 사업을 따로 만들어야 사각지대가 해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와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의 은퇴 가속과 선진국 대비 낮은 소득대체율이 맞물리며 60대 자영업자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여기에 출생률 저하·기대여명 증가까지 겹쳐 한국은 곧 초고령사회 단계에 진입한다.

전용호 인천대 교수(사회복지)는 “근본적으로는 고령층의 디지털 교육을 확대해 디지털 디바이드를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며, 단기적으로는 디지털에 취약한 고령층을 위한 오프라인, 대면 중심의 홍보 및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채명준 기자 MIJustic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