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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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시선] 명 박사와 나비효과

일개 정치 브로커가 일으킨 바람에 정국 요동
여론조사 조작 막을 공직선거법 개정 힘 실려

부드러운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시간이 흘러 세상을 집어삼킬 수 있는 엄청난 위력의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 미국의 한 기상학자가 명명한 나비효과를 연상시킨다. 윤석열 대통령이 명 박사라고 인정한 인물의 입에서 연일 쏟아져 나오는 말들이 야당이 지피는 탄핵이라는 불섶에 던져진 휘발유 격이 되는 일촉즉발의 정국 말이다.

한 달 전 한 언론매체가 명태균이라는 낯선 인물이 대통령 부부에게 전화하여 대통령의 대학 학과 동기동창인 김영선 전 의원을 대선 직후에 열린 2022년 6월 보궐선거에 공천하도록 움직였다는 녹취록을 보도했을 때만 해도 그저 그런가 했다. 그러나 “철창 들어갈 개, 겁에 질려 왕왕 짖어”댄다는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세 치 혀 때문에 보수가 또 망한다”며 공개한 명씨의 카카오톡 문자 내용은 가히 토네이도 이상이다. 김건희 여사가 철없고 무식한데 말이 많은 오빠 대신 사과한다는 내용인데 대통령실에서는 그 오빠가 대통령이 아니라 여사의 친오빠라는 말 외에 이렇다 할 대응도 없다.

이준한 인천대학교 교수 정치외교학과

그래서 2주 전 한 일간지 대기자가 “수석들이 있는 자리에서 김 여사가 대통령에게 민망한 언행을 하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는 전언이 사실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도 “김 여사가 윤석열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데 자신도 엄청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기에 “자신도 권력을 어느 정도 향유할 수 있는 입장”이라고 풀이했다. 대한민국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국회에서 나오는 증언은 더 충격적이다. 명씨의 여론조사회사 직원이자 김 전 의원의 회계책임자 강혜경 전 보좌관이 “여론조사 비용이 3억7500만원이라고 밝히면서 돈을 받아오겠다고 했는데, 돈은 안 받고 김 전 의원 공천을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김 전 의원은 세비의 절반을 명씨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관련자 말이 서로 다르기에 조심스럽지만, 만약 이것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위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국민이 검사 시절 국회에서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기개를 떨치던 윤석열 대통령이 일개 정치 브로커와 미래를 설계했고 여사에게 쩔쩔매고 있다고 믿게 된 자체가 큰 문제다. 녹음에 나오는 명씨의 말투는 공명심과 자기과시의 화신 같다. 명씨가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아직 내가 했던 일의 20분의 1도 나오지 않았다. 입을 열면 세상이 뒤집힌다”며 “내가 (감옥에) 들어가면 한 달 안에 정권이 무너지고”, “한 달이면 (대통령이) 하야하고 탄핵일 텐데 감당되겠나”라고 할까.

명씨가 박사라고 불린 데는 여론조사 경력이 한몫했다. 그런데 연일 나오는 녹취에는 왜곡과 조작의 냄새가 짙다. 직원에게 “윤석열이를 좀 올려갖고 홍준표보다 한 2% 앞서게 해주이소”라고 주문했다. 강씨도 국감에서 “윤 대통령에 대해서도 (경선 및 본선 후보 시절) 81차례 여론을 조사했고, 이에 대한 여(론)조작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명씨의 한마디에 특정 연령대나 성별 또는 지역이 부풀려졌다.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특정 샘플에 가중치를 주기도 했다. 아예 여론조사 결과를 정해두고 거기에 다른 것을 다 맞춘 거 아니냐는 의심까지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명태균 방지법이 쏟아진다. 공직선거법 제108조 제3항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으로 정하는 사항을 여론조사 개시일 전 2일까지 … 서면으로 신고”해야 하는데 면제 대상이 너무 많다. 제6항에 “여론조사와 관련 있는 자료 일체를 해당 선거의 선거일 후 6개월까지 보관”하도록 하는데 이도 너무 짧다. 그래서 명씨는 다 피해왔다. 싹 뜯어고쳐야 한다.

또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을 한 번이라도 위반한 여론조사 기관은 영구 퇴출한다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나왔다. 선거에 영향을 주려고 왜곡, 공표, 보도할 때는 벌금형 대신 징역형으로만 처벌하자는 안도 있다. 그런데 명씨 같은 사람은 바지사장을 통해 조작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여론조사를 조작한 정치 브로커 하나가 일으킨 작은 바람이 공직선거법을 개정시키는 데로 이어졌다. 그 나비효과가 명씨의 말대로 하야와 탄핵으로 이어질까. 벌써 최순실과 장시호의 기시감을 주는 인물이 눈앞에 있는데.

 

이준한 인천대학교 교수 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