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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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원, 범가너처럼 ‘불멸의 가을 에이스’ 도전… 삼성 원태인 “이번 가을야구에 모든 것 바친다. 혹사는 없다”

프로야구 팬들이 故 최동원을 ‘불세출의 에이스’이자 전설로 기억하는 가장 큰 이유는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불굴의 투혼 때문이다. 당시는 지금과는 포스트시즌 체제가 달라 전기리그 우승팀과 후기리그 우승팀이 한국시리즈에 맞붙는 방식이었다. 전기리그 우승팀인 삼성은 후기리그 막판 노골적인 져주기 게임을 연발하며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롯데를 골랐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선 롯데가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삼성의 오판이 하나 있었다. 롯데에는 최동원이 있었다는 것. 최동원은 그해 한국시리즈에 무려 5경기에 등판해 혼자 4승을 모두 책임지며 롯데의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이끌었다. 1차전 선발로 등판해 9이닝 완봉승을 거둔 뒤 이틀을 쉬고 3차전에 다시 선발로 나서 9이닝 2실점 완투승을 거뒀다. 이틀 쉬고 5차전에 선발 마운드에 오른 최동원은 8이닝 3실점(2자책)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하루 뒤 6차전에 구원등판해 5이닝 무실점으로 구원승을 거둔 최동원은 하루만 쉬고 7차전에 다시 선발 마운드에 올라 9이닝 4실점(4자책) 완투승으로 롯데의 우승을 직접 만들어냈다. 투수 혹사에 대한 기준이 달라진 현대야구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도, 나와서도 안 되는 불멸의 대기록이다.

 

투수 분업화가 체계적으로 갖춰진 현대 야구에선 7전4승제의 포스트시즌에선 보통 4선발 체제를 쓴다. 1차전에 선발 등판한 투수가 5차전, 2차전 선발이 6차전에 나오는 식이다. 아무리 뛰어난 에이스 선발투수여도 2경기 이상 등판이 쉽지 않은 구조다.

물론 3경기를 등판하는 경우도 있다. 가을만 한정하면 지구 라이벌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의 에이스이자 지구 1선발이라 불리던 클레이튼 커쇼를 능가하는 최고의 ‘가을 에이스’로 군림했던 샌프란시스코의 매디슨 범가너가 그 사례다. 2014년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1차전 7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뒤 5차전에 다시 선발 마운드에 9이닝 무실점 완봉승을 거뒀다. 그리고 양 팀이 3승3패로 맞선 7차전, 5회에 구원 등판해 5이닝 무실점 완벽투로 직접 샌프란시스코의 우승을 확정짓기도 했다. 이처럼 선발 등판 두 번, 구원 등판 한 번 정도가 현대야구에서 에이스 투수가 해낼 수 있는 최대 한계치다.

 

이야기를 길게 끈 이유가 있다. 2024 KBO리그 한국시리즈(KS·1차전)는 시리즈 초반 비가 일정을 묘하게 꼬면서 실로 오랜만에 에이스의 세 번 선발 등판이 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삼성의 토종 에이스이자 정규시즌 다승왕(15승6패)에 오른 원태인이 1차전 선발 등판에 이어 4,7차전 등판까지 가능하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원태인. 뉴시스
원태인. 연합뉴스
사진=뉴스1

원태인은 지난 21일 광주 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와의 KS 1차전에 선발 등판해 5이닝을 2피안타 2볼넷만 내주며 무실점 완벽투를 펼쳤다. 삼성이 1-0으로 앞선 6회초 무사 1,2루에 굵어진 빗줄기로 인해 서스펜디드 경기가 선언되면서 원태인의 1차전 등판은 5이닝에서 멈춰섰다.

 

22일 재개 예정이었던 1차전이 밤새 내린 비로 인한 그라운드 사정과 비 예보로 인해 하루 더 순연돼 23일 재개되기로 결정되면서 원태인은 휴식 시간을 벌었다. 지금 상황대로라면 원태인은 26일로 예정된 4차전에 나흘 휴식 후 등판할 수 있다. 1차전이 서스펜디드가 되는 바람에 원태인의 투구수는 66구로 비교적 적었다. 나흘 휴식 후 충분히 나설 수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원한다면 사흘 휴식 후의 30일 열리는 7차전에도 선발 등판을 나설 수 있다. 이제는 보기 힘들어진 에이스의 1,4,7차전 등판이 가능해진 판이 짜여진 것이다.

 

‘푸른 피의 에이스’는 이런 상황을 피하지 않는다. 원태인은 22일 취재진과 만나 “세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는데, 당연히 던져야 한다. 당장 내일 열리는 KS 1차전 서스펜디드 게임 6회부터 던지라고 해도 준비돼 있다”고 “난 이번 가을야구에 모든 것을 바치기 위해 준비돼 있다. 그래서 단독 정규시즌 다승왕이 걸렸던 정규시즌 최종전에도 선발 등판하지 않고 가을야구를 준비한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원태인. 뉴시스
원태인. 뉴스1

일부 삼성 팬들은 원태인의 3경기 선발 등판을 두고 과거 배영수(現 SSG랜더스 투수코치)를 떠올리기도 한다. 2000년대 중반 KBO리그 최고의 우완 파이어볼러로 군림했던 배 코치는 2006년 한국시리즈에 1차전 선발로 6이닝 무실점 승리투수가 된 뒤 이후 불펜투수로 변신하는 등 한국시리즈 5경기에 등판해 2승 1홀드 1세이브를 거두며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정규시즌 말미부터 팔꿈치 통증을 안고 있었던 배 코치는 한국시리즈에서의 무리한 투구로 인해 한국시리즈를 마치고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수술 여파로 인해 전성기 시절의 강속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팬들이 배 코치의 사례를 떠올리며 걱정한다’는 취재진의 말에 원태인은 “우승을 한다면 무엇을 못 바치겠는가”라며 “난 다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말했다.

 

원태인 올 시즌 프로 데뷔 후 처음 타이틀을 차지했다. 15승을 거두며 곽빈(두산)과 함께 공동 다승왕에 올랐다. 평균자책점 3.66은 전체 6위, 토종 투수 중엔 1위다. 혹자는 리그 1위인 KIA 네일(2.53)과 1점 이상 차이난다며 원태인의 올 시즌 활약을 폄하하기도 하지만, 원태인은 리그에서 손꼽히는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3.66의 평균자책점은 2014시즌이 역대급 타고투저임을 감안하면 훌륭한 성적이다.

원태인. 뉴시스

일부 팬들의 폄하를 원태인을 가을야구에서의 완벽한 퍼포먼스를 통해 입 다물게 만들었다. 지난 15일 열린 LG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6.2이닝 1실점 호투로 팀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어 KS 1차전에서도 네일과의 명품 투수전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으로 5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66구만 던졌음을 감안하면 비가 경기를 가로막지 않았다면 7이닝은 너끈히 투구할 수 있는 페이스였다.

 

이제 원태인 4차전, 그리고 아직 열릴지 결정되지 않는 7차전을 준비한다. 혹사 걱정에 대해서도 원태인은 “지금은 그때처럼 혹사가 이뤄지진 않는다”며 “현재 내 컨디션은 매우 좋다. 오래오래 야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