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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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반도체 산업, 장비국산화에 달려

반도체 장비 시장이 성장할 전망이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장비 매출액은 지난해 1063억달러에서 3.4% 증가한 1090억달러, 내년에는 무려 17% 증가한 1280억달러를 기록할 것이라 예측했다.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수혜를 입어 2년 만에 성장세로 돌아선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수혜는 국내 반도체 장비기업 대신 해외 반도체 장비기업에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흔히 8대 공정으로 알려진 반도체 소자 제작 공정을 세분화하면 180여개의 공정으로 나뉘는데 이 중 반도체 장비가 필요하지 않은 공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천문학적인 금액이 필요한 반도체 생산시설의 약 70%가 장비 구입비용으로 책정된다. 특히 장비의 성능에 따라 반도체 소자 수율(Yield)이 달라지므로 장비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실질적인 ‘게임체인저’로 반도체 장비기업이 꼽히는 이유이다.

금연욱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사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은 높은 기술 경쟁력을 앞세운 미국(AMAT, LAM Research, KLA), 네덜란드(ASML), 일본(Tokyo Electron)의 다섯 개 선두 기업이 전체 점유율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장비 기업의 기술 수준은 예전보다 많이 진보했으나, 아직 해외 장비 기업보다는 열위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20%대에 그치고 있으며, K반도체를 이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조차 외산 장비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해외 주요국들은 정책적 지원을 기반으로 자국 내 반도체 기술력 확보에 혈안이 되어있다.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은 “미국의 국가안보는 반도체 산업에 달려있다”고 역설하며, 2022년 칩스법을 통과시키고 자국 내 반도체 기업에 대해 막대한 보조금 및 세제 혜택을 주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대만 역시 미국의 사례를 본떠 자국의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나서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이른바 ‘반도체 전쟁’의 차원이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 수준으로 확대되는 모양새이다. 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중국의 반도체 장비 기업인 나우라(NAURA)는 처음으로 글로벌 장비 업계 톱10에 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 각국의 공격적인 반도체 기업 지원 정책과 달리 한국은 소극적인 모습이다. 대기업 기준 15%인 투자세액공제 기간을 3년 연장했으나 이는 미국, 대만보다 10%나 적은 수준이다. 특히 개별 기업에 보조금 지급을 해주는 방안에 대해서는 정부와 국회 모두 미온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 고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반도체 산업을 고려할 때, 미미한 지원으로 기술 진보가 늦어지면 국가 차원에서의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발의된 반도체 관련 특별법은 세제 혜택 및 직접적인 보조금 지급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제는 국내 반도체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 기업 지원에 대한 정책적인 기반을 마련하여, 노광 장비 시장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네덜란드의 ASML과 같이 시장을 지배할 국내 반도체 장비 기업을 육성하는 기틀을 다져야 한다.

 

금연욱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