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조8000억원.’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양대 에너지 공기업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가 짊어지고 있는 빚의 규모다.
에너지 공기업의 부채가 이렇게 눈덩이처럼 불어난 데는 2022년과 2023년 한국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입가격이 높은 것도 한몫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 단가가 동북아 4국(한국·중국·일본·대만) 중 가장 높았던 것이다.
이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전력 수요 예측 실패와 가스공사의 LNG 판매 독점 구조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전문가들은 미국 등 선진국처럼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에너지 공기업들을 통합적으로 규제하고 이끌어나갈 ‘에너지위원회’와 같은 제3의 기관 설립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2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진욱 의원실이 가스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t당 LNG 수입가격은 817달러다. 대만은 t당 623달러로 한국보다 200달러가량 낮았고, 일본(701달러)과 중국(635달러)의 수입 단가도 한국보다 100달러 이상 저렴했다.
앞선 2022년에도 한국은 주변국보다 LNG를 비싼 값에 사 왔다. 한국의 t당 수입 단가는 1078달러인 데 반해 대만(995달러) 일본(892달러), 중국(822달러)은 1000달러를 넘지 않은 것.
산자부에 따르면 지난해 가스공사가 수입한 LNG는 총 3475만2000t이다. 만일 이를 대만 단가로 수입했다면 67억4188만달러(약 9조3132억원)를 아낄 수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지난 2년간 가스 요금이 총 61.2% 인상됐음에도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미수금은 LNG 수입 단가가 판매단가보다 높아 회수하지 못한 비용으로 사실상의 부채다. 가스공사의 누적 미수금(민수용)은 올해 2분기 기준 13조7496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또 지난해 말 기준 가스공사의 부채는 47조4000억원에 달하며 지난해 이자 비용으로만 1조6000억원이 지출됐다.
한국이 인근 국가에 비해 비싼 값에 LNG를 수입하는 배경에는 수요 예측 실패가 자리한다. 산자부는 2년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세우고 이를 토대로 가스공사가 장기 LNG 수급 계획을 세우고 계약을 체결하는데, 계획 단계부터 수요 예측이 크게 빗나간 탓이다.
지난 2017년 발표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 전력생산용 천연가스 소요 예측치는 660만t이다. 하지만 2022년 실제 사용한 천연가스는 1838만t으로 예측치보다 거의 3배가량 많다. 이처럼 부족분이 발생하면 급하게 현물시장에서 LNG를 구하다 보니 장기계약 때보다 단가가 올라가는 것이다.
가스공사의 독점 판매 구조도 문제로 지목된다. 현재 도시가스사업법상 발전용·가정용 등 국민 생활과 연관된 가스 판매는 가스공사만 할 수 있다. 경쟁자가 없으니 공급가를 낮추기 위해 수입 단가를 낮출 동기는 약해진다는 말이 나온다.
이 같은 문제의 재발 방지를 위해 ‘통합 에너지위원회’ 설립 필요성이 제기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미래에너지융합학과)는 “한국지역난방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대주주는 한전이다. 아울러 가스공사가 수입하는 LNG 가격에 한전의 전기 가격이 영향을 받는 등 서로 다 엮여 있다”며 “이들을 종합적으로 규제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통합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또 “현재 가스공사 독점적인 도시가스 판매 구조도 민간에 일정 부분 열어줘 민관이 경쟁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수입 단가가 낮아져 국민의 공공요금 부담 인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진욱 의원 역시 “전력, 가스, 열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시장의 울타리’를 제거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에너지 시장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제고함으로써 국민의 권익을 증진해야 한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들이 이미 갖추고 있는 통합거버넌스를 한국적 현실에 맞게 도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