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광주 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삼성과 KIA의 2024 KBO리그 한국시리즈(KS·7전4승제) 1차전은 비로 인해 역대 포스트시즌 통틀어 최초로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됐다. 22일 재개될 예정이었으나 또 다시 내린 비와 그라운드 사정으로 또 하루 순연됐다.
한국시리즈 흐름을 바꿔버린 이 비는 삼성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LG와의 플레이오프 4경기(3승1패)를 치르느라 지친 삼성 선수단에게 휴식 기회를 제공한 데다 플레이오프 2경기에서 2승 평균자책점 0.66을 기록한 외국인 에이스 데니 레예스가 닷새 휴식 후 3차전, 1차전에서 66구 만을 던진 토종 에이스 원태인이 나흘 휴식 뒤 4차전에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23일 중단된 1차전을 앞두고 KIA 이범호 감독도 “비가 삼성의 선발 로테이션을 더 유리하게 만들어줬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열세인 삼성이 비로 인해 얻은 이득을 확실히 하기 위해선 23일 열린 중단된 1차전과 이어 열리는 2차전에서 적어도 1승1패를 거둬야 했다. 그러나 결과는? KIA의 1,2차전 독식으로 끝났다. 삼성에겐 이제 비로 인한 유리함은 사라졌다는 얘기다.
KIA는 1차전에서 0-1로 뒤지던 경기를 7회 대거 4득점으로 뒤집어 5-1로 승리한 데 이어 2차전은 1회에만 5점을 뽑는 폭발력을 과시하며 8-3로 이겼다. 하루에 2승을 거둔 KIA는 이로써 KS 우승을 위한 ‘9부능선’을 넘어섰다. 역대 KS에서 1,2차전을 모두 가져간 팀이 우승을 차지한 것은 20차례 중 18회로, 그 확률은 90%에 달한다.
재개된 1차전에선 좌타자 김영웅을 상대로 좌완투수를 올릴 것이란 예상을 깨고 우완투수인 제1 셋업맨 전상현을 이른 시점에 올리는 파격을 택한 KIA 이범호 감독의 용병술은 제대로 적중했다. 반면 삼성 박진만 감독의 소극적인 공격 작전은 화를 자초했다. 벤치 싸움에서 KIA의 압승이었다.
1-0으로 앞선 6회 무사 1,2루 상황에서 재개된 경기. 박 감독은 정규시즌 28홈런, PO 2홈런을 때려낸 ‘거포’ 김영웅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했다. 번트가 익숙하지 않은 김영웅의 번트는 KIA 포수 김태군 앞에 바로 떨어졌고, 3루로 뛰던 디아즈는 포스 아웃당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삼성 더그아웃 분위기는 찬물이 쏟아졌고, 이후 박병호의 삼진과 이재현의 투수 땅볼이 나오면서 천금의 득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삼성의 허약한 불펜을 감안하면 대량득점을 위한 강공으로 적극적인 공격을 하는 게 더 승리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눈앞의 안전한 1점을 노리다 죽도 밥도 아니게 된 감독의 명백한 실책이었다.
KIA에겐 행운도 따랐다. 7회 2사 2,3루에서 베테랑 임창민-강민호 배터리가 폭투 2개를 연이어 범하면서 안타 없이 2-1 역전에 성공한 것. 곧이어 소크라테스와 김도영의 적시타가 터져나와 4-1로 점수차를 벌리면서 승기를 굳혔다.
삼성의 1차전 역전패 여파는 곧이어 치러진 2차전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2차전 후보 중 하나였던 좌완 이승현을 1차전을 잡기위해 소모했던 박 감독은 2차전 선발로 우완 황동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2020년 1차 지명 출신의 유망주지만, 경험이 일천한 황동재에겐 이 정도로 큰 무대가 주는 압박감을 이겨낼 재량이 없었다. 1회에만 피안타 5개, 볼넷 1개를 허용하며 5실점한 뒤 0.2이닝 만에 마운드를 물러났다. 반면 KIA의 이날 선발로 나선 데뷔 17년차 ‘대투수’ 양현종은 5.2이닝 동안 8피안타 2볼넷을 허용하면서도 단 2실점(1자책)만 내주는 관록투를 선보이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양현종은 데일리 MVP에 선정됐다. 데뷔 3년차인 올해 38홈런-40도루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를 이미 예약한 KIA 김도영은 2회 솔로포로 데뷔 첫 포스트시즌 홈런을 신고했다.
이날 삼성 타선이 때려낸 안타는 12개로 KIA(10개)보다 2개 더 많았다. 1차전을 아쉽게 내준 탓에 기세가 꺾인 데다 집중력 저하까지 겹치면서 결과는 완패였다. 벼랑 끝에 몰린 삼성은 홈인 대구로 옮겨 반격에 도전한다. KIA와 삼성의 KS 3차전은 하루 쉰 뒤 25일 오후 6시30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다.
경기 뒤 승장 이범호 감독은 “오늘 2경기를 다 잡을 것이라고는 생각 안 했는데, 1차전에서 (전)상현이가 잘 끊어줘서 이겼던 게 2차전도 좀 더 편안하게 치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라면서 “1차전을 못 잡으면 2차전도 힘든 상황이 될 수 있었는데, (양)현종이와 중간 불펜 투수들이 잘 던져줬고, 타자들은 점수 낼 타이밍에 진루타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라고 총평을 남겼다.
패장 박진만 감독은 “광주에서 1승1패가 목표였는데, 아쉽다. 이제 대구로 가니까 대구에서는 우리의 승리 패턴인 장타가 나올 것을 기대하며 분위기를 바꿔봐야 할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