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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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선 경합주 할퀸 허리케인, 해리스 지지율도 흔들었다 [세계는 지금]

선거 코앞 최대 변수 떠올라

10월 초 美 동남부 잇따라 강타 큰 피해
주민들 복구에 전념… 선거 관심 줄어
선거운동·투표용지 배달 등 차질 빚어

사전투표 초반 기대 이상 참여 불구
악조건 속 부동층도 투표할지 미지수

대규모 자연재해 집권 여당에 더 불리
트럼프, 연일 바이든정부 책임론 공세
해리스, 재난 대응 신뢰도는 앞섰지만
지지율 주춤… 태풍 피해 경합주선 밀려

2024년 미국 대선의 ‘옥토버 서프라이즈’(미 대선이 임박한 10월에 갑작기 발생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돌발 변수)는 무엇일까. 워싱턴포스트(WP)는 다음 달 5일(현지시간) 치러지는 대선에 임박해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지만, 현재로선 허리케인이 가장 강력한 옥토버 서프라이즈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두 번의 피격 시도, 조 바이든 대통령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으로의 민주당 대선 후보 교체 등 이미 굵직한 변수를 여러 번 맞닥뜨린 2024년 미국 대선에서 10월의 변수로는 허리케인이 떠오르고 있다. 이달 초 미 동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헐린, 밀턴 등의 여파가 선거 진행과 민심의 향방에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허리케인의 영향을 받은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등은 선벨트(남부) 경합주로 분류되는 주들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태풍 헐린의 피해를 입은 조지아 오거스타의 건물 잔해 앞에서 태풍 대응과 관련한 발표를 하고 있다.(왼쪽사진) 오른쪽 사진은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가운데)이 21일 역시 태풍 헐린의 복구작업이 진행되는 노스캐롤라이나 스와나노아 지역을 방문해 조 바이든 행정부의 허리케인 대응을 비판하는 모습. 오거스타·스와나노아=AP·AFP연합뉴스

◆투표 여건 안 좋은데 사전투표율은 선방

이달 초 태풍 헐린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노스캐롤라이나는 여전히 원래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NBC방송에 따르면 노스캐롤라이나의 여러 도로가 여전히 폐쇄된 상태다. 태풍 피해를 직격으로 받은 애슈빌 카운티의 경우 전기, 수도, 인터넷 복구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완전하지 않다. NBC는 가가호호 방문 선거운동, 선거 타운홀미팅 등 선거 기간에 벌어지는 여러 일들이 이 지역에서 현재 비현실적인 일이 됐다고 설명했다.

피해 지역에선 사람들의 관심사가 대선으로부터 잠시 멀어지기도 한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작은 마을 미니애폴리스에 거주하는 래리 존스는 NBC에 “태풍이 발생한 이후로 나는 (복구에 전념하느라) 뉴스를 전혀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투표소로 사용할 공간들이 태풍 피해로 사라지는가 하면 우편 사전투표를 위한 우편용지 배달이 누락되고 있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NBC와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수십 년간 미국 플로리다에서 활동한 기상학자 존 모랄레스는 전날 미 방송사 NBC6 사우스 플로리다 일기 예보 도중 허리케인 '밀턴'의 위력을 설명하다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X 캡처

복구작업과 함께 원활한 선거 진행을 위한 여러 노력도 병행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우편 당국은 주 선거관리위원회에 도로 폐쇄 상황을 계속 전달하고 있으며, 투표를 요청한 사람들의 명단을 확인해 이들이 투표용지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얀시카운티의 공화당 소속 존 앵글린 주의회 의장은 “(태풍 피해를 받은 이들이) 접근성을 높이도록 투표소를 확장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당파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미국의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 22일 NOAA가 제공한 허리케인 크리스티 위성 이미지. AP연합뉴스

2020년 선거까지만 해도 농촌 지역 카운티에는 사전투표소가 한 곳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지만 태풍 피해 지역 주민들이 먼 곳으로 이동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오히려 임시투표소를 추가로 설치하기도 한다.

이런 노력이 있어선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17일(현지시간)부터 시작된 첫 사전투표 결과는 선방한 것으로 나타났다. AP통신에 따르면 주민들은 매우 추운 날씨에도 외투와 모자, 장갑을 착용하고 사전투표 첫날 애슈빌 카운티 사우스번콤 도서관 투표소 앞에 길게 줄을 섰다. 노스캐롤라이나 사전투표 첫날의 투표율은 전체 유권자 수 대비 4.54%였는데, 2020년(4.78%)과 비교하면 다소 하락했으나 비슷한 수치다.

 

태풍의 영향을 받은 남부 경합주 조지아에서는 오히려 사전투표 첫날 투표 수가 크게 늘었다. 조지아 당국은 15일 사전투표 첫날 32만8000개의 투표용지가 수집됐다고 밝혔다. 2020년에는 조지아에서 사전투표 첫날 13만6000개의 사전투표용지가 수거됐다.

이들 주에서 사전투표율이 나쁘지 않게 나타난 것은 적극 투표층이 투표율 하락을 우려해 사전투표 첫날 모여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마지막까지 투표율을 유지할 수 있을지, 태풍으로 인해 투표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부동층도 투표에 참여할지 등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사진=AFP연합뉴스

◆트럼프의 ‘정권 심판론’ 먹힐까

일반적으로 선거 직전의 대규모 자연 재해는 집권 여당에 더 불리하다.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경제 문제, 복구 상황 등과 연결돼 정권심판론으로 연결되기 쉽기 때문이다.

21일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따르면 이달 초 조사기관 임팩트소셜이 실시한 분석에서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온라인 대화 중 12%가 정부의 허리케인 대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한 부정적 발언 중 그의 재난 대응과 관련된 발언은 7%에 불과했다.

 

20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쉬빌에서 허리케인 헬레네 영향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를 치우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를 톡톡히 활용하고 있다. 그는 노스캐롤라이나나 조지아, 플로리다 등 태풍 피해지역을 방문해 연방 재난관리청(FEMA) 예산과 관련해 조 바이든 행정부와 해리스 부통령이 구호자금 예산을 불법 이민자를 수용해 투표권을 주는 데 썼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공식 반박했으며,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 역시 FEMA는 재난 구호자금과 이주민 대피소에 대한 긴급자금을 별도로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수차례 지적하고 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CNN은 “허리케인 밀턴의 여파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만드는 가짜뉴스 소용돌이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21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스와나노아의 허리케인 헬레네 피해 현장을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만 CNN은 해리스 부통령이 허리케인으로 인한 위기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능력, 지휘력 등도 보여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해리스 부통령은 위기를 기회 삼아 지도력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앞서 해리스 부통령은 이달 초 노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 등 피해 지역을 찾아 피해 상황과 복구작업 현황을 보고 받고 지역 주민들을 위로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노스캐롤라이나에서만 도로 보수 등 교통부문에 사용할 긴급 재해복구자금 1억달러(약 1348억원)를 승인했는데, 이는 해리스 부통령을 측면 지원한 것으로 풀이된다.

해리스 부통령은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태풍 피해를 ‘정치게임화‘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에 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격을 받아치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배우 우피 골드버그가 진행하는 토크쇼에 출연해 “그들은(태풍 피해자) 모든 것을 잃었는데 누군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 게임을 하고 있다”며 “그는(트럼프 전 대통령) 다른 사람의 고통에 신경을 쓰는, 매우 기초적 수준에서조차 공감능력이 부족해 두렵다”고 지적했다.

 

사진=AP연합뉴스

◆해리스, 신뢰도에선 앞섰지만

재난 대응과 관련된 신뢰도 자체에선 해리스 부통령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데이터포프로그레스 조사(10월 11∼13일 실시, 미국 등록유권자 1206명 대상)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기후 위기 및 극한 기상 재앙’에 대처하기 위해 어떤 후보를 더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50%를 얻어 트럼프 전 대통령(46%)을 앞섰다. 조사가 실시된 시점은 허리케인 밀턴이 플로리다에 상륙한 지 며칠 후, 허리케인 헐린이 시작된 지 약 2주가 넘은 시점이다. 오차범위는 ±3%포인트로 해리스 부통령이 오차범위 밖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높은 신뢰를 얻었다.

그럼에도 허리케인의 발생은 결국 집권당 후보인 해리스 부통령이 부정적 영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9월 TV토론 직후 지지율에서 앞섰던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전국 여론조사 격차는 10월 초부터 좁혀지고 있다.

10월 들어 해리스 부통령의 상승세가 주춤한 것과 허리케인의 연관성이 없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등 태풍 피해 경합주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가는 상황이다. 태풍 피해로 인한 민심 이반의 영향이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홍주형 특파원 jh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