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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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과학자들 ‘유레카’ 그 순간

다빈치 신체 조직 탐구 관련 기록부터
퀴리 부인의 라듐 발견 실험 일기까지
500년 간의 102개 ‘지식 발견 모음집’
알려지지 않은 개인사·유머 등도 담아
“독자에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 들게 해”

지식의 원전 - 다빈치에서 파인만까지 인류 지성사를 빛낸 원전기록들/존 캐리/ 지식의 원전 번역팀 옮김/ 바다출판사/ 3만5000원

 

“그 녀석은 인간의 의지와 관련이 있는 것이지만, 가끔은 자기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남자들이 그것을 발기시키고 싶어도 완강히 거부하면서 늘어져 있기도 하고, 때로는 제 주인에게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제멋대로 굴기도 한다. 가끔 자고 있을 때 깨어나 있질 않나, 써먹으려고 할 때 거부하거나 반대로 주인의 허락 없이도 활동을 하고 싶어하질 않나, 이 녀석은 늘어져 있든 깨어나 있든 모든 게 자기 좋을 대로다. 이런 것을 보면, 이 피조물은 마치 인간과는 별도의 삶과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레오나르도 다빈치 ‘다빈치, 과학의 서곡’ 중)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생애 약 8000쪽에 달하는 노트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책은 그 가운데 ‘부검’, ‘해저의 흔적’, ‘새들의 눈’ 등 다섯 편의 단상을 소개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해부학과 지구과학, 동물학 등 각 분야를 자유롭게 오가며 탐구하고 사유했다. 특히 신체 조직의 수축과 이완, 혈액의 이동, 의지와 상관없이 반응하는 남성 성기에 관한 기록 등은 다빈치의 천재성은 물론 관찰력과 유머감각까지 보여주고 있다.

존 캐리/ 지식의 원전 번역팀 옮김/ 바다출판사/ 3만5000원
다빈치는 23살부터 40여 년 동안 해부학, 천문학, 건축학, 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아이디어를 노트에 정리했다. 그 분량은 8000쪽에 이른다. 바다출판사 제공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신에 의해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뇌가 없고 척추만 있는 연체동물(몰러스크)로부터 진화했다는 자신의 생각을 기록해 놓았다.

 

“이렇게 꼴사납고 파괴적이며 무시무시한 대자연의 추한 모습이라니 … 필시 악마의 사도가 쓴 책일 거야.” 그가 ‘종의 기원’(1859)을 출간하게 된 것은 1831년부터 약 5년간 영국 군함을 개조한 비글호를 타고 브라질과 티에라델푸에고섬, 오스트레일리아 등을 탐험한 경험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윈은 이 탐험에서 유목민과 현대인의 차이 혹은 인간과 동물 간의 유사성, 지질학적 차이에 따른 동식물 등을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이 책에도 ‘진화 기행문’의 일부가 실렸다. 이 기록들은 뒷날 ‘진화론’의 필요조건들로 제시된다.

 

“하루 온종일 끓는 광석을 쇠막대로 저어야 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아름다운 색의 ‘라듐’을 발견하고는 매우 행복한 상태로 매일매일 실험실에서 보냈다”라고 적은 퀴리 부인의 일기는 ‘라듐’의 특성에 따른 수많은 시행착오와 좌절 속에서도 오직 연구에만 몰두해 왔다는 것을 알려준다.

에드워드 제너의 우두법 치료는 최초의 백신으로 여겨진다. 1796년 5월 14일 여덟살 소년에게 첫 백신 주사를 놓는 모습을 어니스트 보드가 그렸다.  바다출판사 제공 
최초의 사진. 1826년 프랑스의 발명가 니세포르 니엡스가 농장을 촬영했다. 바다출판사 제공 

다빈치 이후 500여년간 인류가 축적해 온 근대 지식의 발견 순간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책이다. 익히 들어 익숙한 뉴튼, 갈릴레이, 아인슈타인, 퀴리 부부의 연구기록뿐 아니라 리처드 파인만, 칼 세이건 등 총 102개 근원적 지식 발견의 순간들을 담았다. 천재 과학자들이 그들의 지식 발견 첫 순간을 직접 기록한, 말 그대로 ‘원전(原典)’ 모음집이다. 이미 알려진 세상의 지식이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결과로 이어져 왔는지, 그 최초 발견자의 기록을 통해 왜곡 없이 전달한다. 책이 지닌 미덕은, 편저자의 특별한 ‘주의’나 ‘주장’을 배제한 채 지성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최초의 발견 기록들, 그 순수한 원전을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함께 배치한 컬러 도판 102점 또한 생생함을 더한다.

 

‘알게 된다는 것’의 희열을 위해 때로는 정신 나간 얼간이로 치부당하면서도 목표를 향해 끝까지 나간 이들의 연구는 르네상스 이후 세상을 완전히 뒤바꿔 버렸다. 개인적 생활사 속에서 라듐의 발견 순간을 풀어간 퀴리 부인 이야기, 문명의 우열론을 가리며 진화를 설명해 가는 다윈의 기록, 도킨스의 유전자 에세이, 소금 한 알갱이로 우주의 삼라만상을 논하는 칼 세이건 등 세기를 대표하는 천재들의 지적 유희를 경험할 수 있다. 인류 지성의 발전사를 한 권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750쪽이 넘는 분량을 일반 독자들도 무리 없이 읽어낼 수 있도록 일기와 기행문, 과학적 사료 등 흥미로운 문헌을 골라 붙였다. 과학을 바로 옆자리에 앉혀 놓았다.

에디슨이 발명한 백열전구의 도면. 전기 조명은 1880년 1월 특허 승인을 받았다. 바다출판사 제공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영역을 규정한 심리학자다. 그는 무의식에 대해서 우리가 낮에 경험하는 규범과 질서, 의식적인 것들에서는 알 수 없으며, 미처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깊은 밤 꿈 속에 드러나는 욕망이라고 설명한다. 페르디난드 호들러의 작품 ‘밤’. 바다출판사 제공 

“우리는 실험을 관찰할 때 착용할 검은 안경을 지급받았다. 검은 안경이라니! 20마일 떨어진 곳에서 검은 안경을 쓴다면 실험을 제대로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이 거리에서 나의 눈에 해로운 것은 (밝은 빛은 눈에 손상을 주지 않는다) 자외선밖에 없었다. 나는 트럭의 앞유리 뒤로 갔는데, 자외선은 유리를 통과할 수 없으므로 그곳은 안전한 곳이었다. 거기서 나는 그 끔찍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리처드 파인만 ‘어떤 죽음, 그리고 원자폭탄’ 중)

 

“흰색과 검은색 페인트를 섞으면 회색의 페인트를 얻게 된다. 회색 페인트와 회색 페인트를 섞는다고 다시 원래의 흰색과 검은색 페인트를 얻을 수는 없다. 멘델 이전에 유전을 보는 시각은 페인트를 섞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물론 현재에도 많은 사회 문화에서 유전을 ‘피’가 섞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젠킨은 점차로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는 가정에 대해서 주장하는 것이다.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혼합유전이라는 가정하에서 변이는 점차 궁지에 몰리게 되어 사라지고, 획일성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리처드 도킨스 ‘세포 하나에 들어 있는 정보’ 중)

안톤 반 레이후엔훅은 최초로 원생생물과 박테리아를 발견했다. 세포에 셀(cell)이라는 이름을 붙인 인물이다. 바다출판사 제공 
윌리엄 허셜은 천왕성과 토성의 위성 미마스, 엔셀라두스를 발견했다. 그의 조수 역할은 한 여동생 캐롤라인 허셜은 혜성 8개와 성운 11개를 발견했다. 바다출판사 제공 
갈릴레오는 망원경으로 태양 빛에 의한 밝기의 정도를 관찰해 달의 표면을 그렸다. 바다출판사 제공

이처럼 최초 발견자들의 원 기록은 그 원리를 궁금해하던 애초의 상황부터 중간 과정, 순간순간의 정신적 단상, 그리고 마침내 발견을 이룬 희열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루고 있다. 아울러 담담히 풀어가는 명석한 이론 설명을 포함해 정확한 지식을 전달한다. 독자 역시 그 체험의 현장에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이유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