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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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비트·빗썸 독주에… 설 땅 잃어가는 중소 거래소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에 밀려나

점유율 업비트 55.7% 빗썸 39.9% 달해
수수료 무료·이용료율 앞세워 ‘영토 확장’
1·2위 거래소 공격 마케팅에 96% 과점
‘울며 겨자먹기’ 중소 거래소들 수익 악화
코인원·고팍스 등 점유율도 쪼그라들어

국감서 “예치금 이자 과열 경쟁 대책 필요”
금융당국 “독과점 이슈 전반 살펴보겠다”

거래수수료와 이용료율을 둘러싸고 가상자산거래소 간 과도한 경쟁이 벌어지면서 중소형 거래소의 경쟁력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금융당국과 공정거래위원회는 도합 시장 점유율 90%를 넘은 1·2위 업체 업비트와 빗썸의 독주 체제에 따른 불공정한 거래 등에 대한 조사를 예고했다.

 

서울 강남구 업비트 고객센터 시황판에서 비트코인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뉴시스

24일 가상자산 중계 사이트 코인게코에 따르면 이날 기준 국내 5대 거래소의 일일 거래량 점유율은 업비트 55.7%, 빗썸 39.9%, 코인원 3.2%, 고팍스 0.8%, 코빗 0.4% 순으로 나타났다. 업비트와 빗썸이 전체의 96%를 차지하는 과점 양상이다.

 

1위 업체 업비트의 시장 점유율은 2020년 케이뱅크와 실명계좌 제휴를 맺으면서 급등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서 가상자산 투자 붐이 일었는데, 시중은행과 제휴한 빗썸 등 다른 거래소와 달리 휴대전화 등을 통해 간편하게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인터넷은행과 손을 잡은 업비트가 점유율을 키우는 데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1개 사업자의 점유율이 50%, 셋 이하 사업자의 점유율이 75% 이상이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규정된다. 공정위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상대로 독과점 지위 남용에 대응한다. 하지만 그동안 가상자산 업권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거대자본을 등에 업은 상위 거래소들은 수수료 무료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고, 점유율이 낮은 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따라가다 수익 악화에 허덕이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강준현 의원실에 따르면 5대 거래소는 2022년부터 이달까지 10차례 수수료 인하를 추진했다. 실제로 빗썸은 2023년 10월부터 지난 1월까지 수수료가 없다고 홍보했었다. 다만 따로 쿠폰을 등록해야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해 이를 등록하지 않은 사용자는 업계에서 가장 높은 수수료 0.25%를 내야 했다. 강 의원 측은 이 기간 빗썸이 이런 ‘꼼수 영업’을 통해 52조원에 달하는 거래대금에 수수료를 매겼을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수수료 무료 정책을 따라간 중소형 거래소 코빗은 지난해 269억원의 영업손실을 봤고, 고팍스도 16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거래수수료 무료화에 동참하지 않은 코인원은 빗썸의 수수료 무료 기간인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1월까지 시장 점유율이 5.5%에서 1.5%로 4%포인트가 감소했다. 원화 거래가 안 되는 코인거래소는 최근 11개사가 영업종료를 선언했고, 3개사가 영업을 중단했다.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된 지난 7월에는 제 살 깎아먹기식 이용료율 경쟁이 발발했다. 이용료는 거래소 예치금에 대한 일종의 이자다. 민주당 김용만 의원은 이날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지난 7월19일부터 업비트와 빗썸이 (이용료율) 경쟁을 하다가 23일 빗썸이 연 4%로 파격 상향하자 금감원이 제동을 걸어 6시간 만에 철회를 하는 사태가 빚어졌다”며 “자율협약에만 맡기다 보면 계속해서 경쟁 과열이 일어날 것 같은데 이용료율 산정 기준, 지급 주기 등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비트코인 모형 모습. 연합뉴스

국감에서 가상자산 시장의 독과점 문제가 연이어 지적되자 금융당국과 공정위는 조사를 예고한 상태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국감에서 “(업비트 독점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으며, 시장 구조적 문제나 독과점 이슈는 가상자산위원회를 구성해 전반적으로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도 지난 21일 국감에서 “(업비트가)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했는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