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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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수용성 때문에”…환경부의 핑계 [기후가 정치에게]

일회용컵보증금제 ‘지자체 자율 시행’ 가닥
환경부, 사실상 전국 확대 포기
대안 검토된 ‘무상제공 금지’도 보류
환경장관 “강제가 최선 아냐”
野강득구 “환경정책을 자율로? 의지 의심스러워”
與김소희 “무상제공 금지, 적극 고려해야”

환경부가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지자체 자율에 맡기는 안을 공개했다. 일률적인 전국 확대 시행 포기를 분명히 한 것이다. ‘수용성’을 고려한 안이란 설명이다. 환경부는 내부적으로 대안 중 하나로 일회용컵 무상제공 금지도 고려했다가 보류했다. 이 또한 수용성을 이유로 들어서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결과적으로, 환경부가 2022년 전국 시행 예정이던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유예·축소한 이후 2년 가까이 제도를 표류시키더니 결국 각 지자체에 그 이행 책임을 떠넘긴 꼴이 됐다. 사실상 규제 후퇴라는 지적에 환경부는 ‘일회용품 감량’이란 명분엔 공감한다면서도 개별 제도에 대한 국민 수용성을 연거푸 방패막이로 삼았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24일 환경노동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지역 여건에 따른 맞춤형 시행’을 골자로 한 일회용컵 보증금제 개선 방향을 설명했다. 핵심은 각 지자체가 알아서 보증금액, 대상시설 범위 등을 조례로 정하도록 하잔 것이다. 김 장관은 이와 관련해 “정부가 정책하면서 소상공인이나 모든 국민에게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건 최선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용성이 높고 지속가능한 제도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은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유예하면서 환경부 스스로가 재를 뿌려 제도를 방해한 것”이라며 “환경부가 애초에 제대로 시행할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비판했다. 애초 2022년 6월 시행 예정이었으나 환경부가 겨우 3주 전 시행을 유예하고 수개월 뒤 축소 시행한 게 제도 안착을 방해했단 지적이다. 이 시기는 20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 임기가 시작하면서 정권교체가 이뤄진 때였다.

 

강 의원은 김 장관이 ‘자율적으로 하지 않는 걸 억지로 하게 하는 게 바람직하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말한 데 대해서도 “정책은 자율에 맡길 수 있는 게 있고 법으로 강제할 수밖에 없는 게 있는 것”이라며 “환경 정책을 자율로 가겠다고 하는 건 문제다. 환경부가 환경 정책을 펼칠 의지가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24일 오전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완섭 환경부 장관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연합뉴스

국민의힘에선 환경부가 일회용컵 감량을 위해 보다 전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무상제공 금지를 검토해야 한단 주장이 나왔다. 

 

김소희 의원은 김 장관에게 “일회용컵 무상제공 금지에 대해 적극 고려해달라”며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가장 큰 문제는 ‘일회용컵을 쓴다’는 가정 아래 만들어진 제도란 것이다. 원천적으로 감량해야 하고 일회용컵 대신에 텀블러를 쓰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부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자율 시행과 함께 ‘일회용컵 무상제공 금지’를 병행하는 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했던 것으로 최근 국감에서 확인됐다. 국감에서 공개된 환경부 내부 문건에 따르면 일회용컵 무상제공 금지에 대해 “제도가 단순해 시행이 용이하면서도 감량 효과를 제고할 수 있으며 환경 정책 후퇴 비판도 상쇄 가능”하다며 “비닐봉투 등 기존 무상제공 금지 시행 사례를 참고할 때 판매자 반발은 적고, 제도 초기 소비자 반발은 예상되지만 제한적일 것”이라고 평했다. 

 

김 장관은 이날 일회용컵 무상제공 금지 대안과 관련해 “실질적 감축을 위해 종국적으로 가야 하는 방향이지만 저희의 판단은 ‘당장 할 수 있느냐’에 대해, 수용성 문제로 일단 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수용성’을 들어 무상제공 금지 대안을 보류했단 취진데, 관련 내부 문건에 “제도 초기 소비자 반발은 예상되지만 제한적일 것”이라 평한 것과 배치된다. 

 

실제 환경부가 일회용컵 무상제공 금지 대안에 대한 수용성 평가를 위해 여론조사 등 객관적 작업을 한 건 아니라고 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무상제공 금지 대안 보류와 관련해 “수용성 유무를 판단해서 결정한 게 아니라 그 또한 새로운 규제이기 때문에 시행 전에 준비하고 이해관계자 의견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나”라며 “그런 차원에서 (김 장관이) 답변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일회용컵 감량 정책 후퇴의 이유로 수용성을 들었지만 실제 국민 여론은 관련 규제에 긍정적이란 조사가 여럿이다. 지난해 11월 환경운동연합이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전국 18세 이상 1000명 상대로 진행한 조사에서 ‘일회용품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규제 정책을 도입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동의한다’는 답이 81.4%나 됐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률을 14.9%였다. 

 

환경부가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을 준비하면서 2017년 10월26일부터 11월4일까지 보증금제 도입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했을 때도 응답자 71.4%가 찬성한 바 있다. 당시 담당 과장이었던 김병화 환경부 차관 또한 국감에서 일회용컵 보증금제 추진 당시 상황에 대해 “사회적으로 폐플라스틱 처리 문제에 대해 굉장히 큰 문제가 있었고 그런 차원에서 일회용컵 플라스틱을 줄이고 수거하고 재활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굉장히 컸다”고 말하기도 했다. 

 

환경부는 이번에 내놓은 지자체 자율 시행안의 경우 그 적용을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하다. 김 장관이 환노위에서 일회용컵 보증금제 개선방안을 논의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재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이 지자체가 조례를 통해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을 발의해놓은 상태다. 환경부가 내부적으로 검토했다 보류한 무상제공 금지를 골자로 한 개정안도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이 24일 발의했다. 이런 사정으로 추후 국회 환노위 차원에서 일회용컵 보증금제 관련 법 개정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가 기후에 답하는 그 날까지 씁니다, 기후가 정치에게.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