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나의 순간이 아니라 아버지가 빛나는 영광의 순간” LA다저스 프리먼, 월드시리즈 사상 첫 끝내기 만루포 작렬

“It’s not my moment, it’s his moment”(지금 이 순간은 나의 영광의 시간이 아니다. 나의 아버지의 순간이다)

사진=AP연합뉴스

미국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WS·7전4승제) 사상 첫 끝내기 만루홈런을 때려낸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의 프레디 프리먼이 감격의 순간 남긴 말이다. 프리먼은 “어릴 때 관중석이 있는 아버지가 나를 매일 배팅 연습을 데려다주셨다. 지금 내가 때려낸 만루 홈런은 내가 아니라 아버지가 빛나는 영광의 순간”이라며 사상 첫 끝내기 그랜드슬램의 공을 아버지에게 돌렸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은 물론 사상 처음 만들어낸 상황에 대한 기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표현이다.

 

이번 WS는 통산 27회로 최다 우승에 빛나는 뉴욕 양키스와 2020년 이후 4년 만이자 통산 8번째 WS 우승에 도전하는 다저스의 맞대결이 성사됐다. 한때 뉴욕과 브루클린을 연고지로 하며 이웃 사이기도 했던 두 팀은 WS에서 가장 많이 만난 사이기도 하다. 이번 WS 전까지 11번을 맞붙어 양키스가 8번, 다저스가 3번 WS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다만 21세기에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팀의 마지막 WS는 1981년으로, 43년 만에 열리는 ‘클래식 매치’다.

 

그 첫 판부터 끝내기 만루홈런이라는 드라마가 쓰여지며 다저스가 우승 확률 63%를 거머쥐었다.

 

미국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를 대표하는 양키스와 1957년까지 브루클린 다저스라는 이름으로 양키스와 함께 뉴욕의 맹주를 다투었으나 항상 양키스의 그림자에 가렸던 다저스는 1958년부터 캘리포니아주로 연고지를 옮겼다. 뉴욕 자이언츠와 함께 미국 서부로 옮겨 LA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되어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라이벌이자 명문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이번 WS는 1981년 WS에서 다저스의 4승 2패 우승에 힘을 보탠 다저스의 전설적인 투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가 WS 개막을 사흘 앞둔 지난 23일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번 시리즈에 추모의 의미까지 더해졌다.

 

이날 경기는 다저스 소속으로 1981년 월드시리즈 최우수선수를 수상했던 스티브 예거와 다저스 투수 전설 오렐 허샤이저의 시구로 문을 열었다.

 

양키스의 1선발 에이스 개릿 콜과 시즌 중반 디트로이트에서 WS 우승을 위해 트레이드해온 다저스의 선발 잭 플래허티의 치열한 투수전으로 전개된 이날 경기의 균형을 깬 것은 다저스였다. 5회 1사 후 키케 에르난데스의 우익수 쪽으로 향하는 3루타로 득점권에 나갔고, 윌 스미스가 우익수 희생플라이로 가볍게 에르난데스를 홈에 불렀다.

사진=EPA연합뉴스
사진=EPA연합뉴스

그러자 양키스는 6회초 반격에서 곧바로 경기를 뒤집었다. 이번 가을 들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애런 저지 대신 저지 이전에 양키스 간판 타자였던 지안카를로 스탠튼이 또 한 번 괴력을 발휘하며 담장을 넘긴 것이다. 선두타자 후안 소토가 단타로 출루한 양키스는 에런 저지가 삼진으로 물러났으나, 4번 타자 스탠튼이 플래허티를 상대로 역전 투런포를 쏘아올렸다. 스탠튼은 1B-2S에서 플래허티의 몸쪽 낮은 너클 커브를 그대로 걷어 올려 다저스타디움 왼쪽 폴 안으로 타구를 넣었다. 스탠턴의 이번 포스트시즌 6번째 홈런이다.

 

숱한 득점 기회를 놓치며 끌려가던 다저스는 8회말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1사 후 오타니 쇼헤이가 우익수 쪽으로 2루타를 터트렸고, 양키스 중계 플레이 과정에서 나온 실책을 놓치지 않고 3루까지 진루했다. 후속 타자인 무키 베츠는 중견수 쪽으로 희생플라이를 쳐 2-2 동점을 만들었다.

 

양키스는 9회초 2사 후 글레이버 토레스의 홈런성 타구가 관중이 먼저 잡아버리는 바람에 인정 2루타로 바뀌는 불운으로 득점에 실패했고, 경기는 연장으로 접어들었다.

 

양키스는 연장 10회초 재즈 치좀 주니어의 빠른 발로 점수를 얻었다. 1사 후 우중간 안타로 출루한 치좀은 2루 도루에 성공했고, 계속된 1사 1, 2루 앤서니 볼피 타석에서는 3루까지 훔쳤다. 볼피의 유격수 땅볼 때 치좀은 홈을 밟았다.

사진=EPA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다저스는 10회말 1사 1루에서 토미 현수 에드먼의 중전 안타로 1, 2루 기회를 잡았다. 오타니 쇼헤이가 파울 플라이로 허무하게 물러났지만, 무키 베츠의 고의 볼넷으로 모든 베이스가 꽉 찬 상황에서 프리먼이 타석에 섰다. 발목 부상 탓에 MVP 트리오인 오타니, 베츠에 비해 이번 포스트시즌 들어 타격감이 가장 떨어져있던 프리먼이었지만, 슈퍼스타는 결정적인 순간 한 방을 쳐줄 수 있음을 증명했다. 좌완 네스터 코르테스의 초구 148.8km(92.5마일) 짜리 포심 패스트볼이 몸쪽 낮은 곳으로 잘 들어왔지만, 프리먼은 이를 크게 걷어올렸다. 발사각도 30도로 잘 맞은 이 타구는 타구속도 175.7km(109.5마일)로 124m를 날아가 우중간 담장을 단번에 넘어갔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할 수 있는 이 타구로 프리먼은 이날 밤 최고의 남자가 됐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