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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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잘 통할 EU 지도자 없소?”…미국 대선 앞두고 회원국들 ‘비상’

뤼터 나토 사무총장, 최적임자로 꼽혀
‘극우 성향’ 오르반·두다·멜로니도 거론

미국 대통령 선거가 채 열흘도 안 남은 가운데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후보보다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자 유럽연합(EU) 회원국들에 비상이 걸렸다. 그간 안보를 사실상 미국에 의존해 온 EU 국가들로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적대적인 트럼프의 재집권이 달가울 리 없다. EU를 대표해 트럼프를 달래고 설득할 지도자가 누구일지를 놓고 설왕설래가 분분한 모양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사진은 2019년 7월 미국 백악관을 방문한 뤼터 당시 네덜란드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는 모습. 백악관 홈페이지

26일(현지시간) 독일 방송 도이체벨레(DW)에 따르면 앞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는 경우 미국을 상대할 EU의 지도자로 가장 먼저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이 꼽힌다. 뤼터는 2010년부터 약 14년간 네덜란드 총리를 지내고 현재는 나토 수장으로 옮긴 상태다. 하지만 네덜란드 총리 시절 트럼프 1기 행정부를 겪었다는 점, 나토와 EU는 회원국이 거의 대부분 겹치는 등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 등을 감안할 때 EU를 위한 뤼터의 역할은 계속될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실제로 뤼터는 이달 초 나토 사무총장으로 정식 취임한 뒤 부쩍 트럼프와 ‘코드’를 맞추고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재직한 2017∼2021년 내내 유럽 동맹국들과 갈등을 겪었는데 그 근본 원인은 바로 방위비 지출이었다. 트럼프는 유럽의 나토 회원국 대다수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 예산 비율이 2%에 못 미친다며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무임승차자”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이에 유럽 국가들은 “동맹을 돈으로 보는 무리한 발상”이라며 반발했다. 최근 뤼터는 “트럼프의 말이 옳았다”며 “덕분에 나토 회원국 상당수가 ‘GDP 2% 방위비 지출’이란 기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뤼터는 트럼프가 대통령 임기 중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 구상을 꺼내들고 경제와 안보 다방면에 걸친 대(對)중국 압박을 가한 점에 대해서도 “올바른 방향이었다”며 극찬했다. DW는 이런 뤼터를 두고 “향후 EU를 대표해 트럼프와 전략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도자”라고 높이 평가했다.

 

왼쪽부터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세계일보 자료사진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등도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코드’를 잘 맞출 수 있는 EU 지도자로 거론된다. 이들은 이민자 문제에 엄격하고 성소수자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등 극우 성향에 가깝다는 점에서 트럼프와 일맥상통한다.

 

오르반은 트럼프가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에도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그와 만나 밀담을 나누는 등 돈독한 우정을 과시해왔다. 오르반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푸틴이 오르반을 통해 백악관에 로비를 시도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두다는 트럼프가 대통령이던 시절 “폴란드에 주둔하는 미군을 늘리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을 만큼 대미 외교에서 성공적이었다. 폴란드 내 미군 기지를 ‘포트 트럼프’(Fort Trump·트럼프 기지)로 명명하겠다고 할 정도로 친(親)트럼프 색채가 강하다. 폴란드의 GDP 대비 국방 예산 비율은 EU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2022년 취임한 멜로니는 트럼프 행정부를 경험하진 않았다. 다만 이민자 및 성소수자에 대한 멜로니의 태도는 트럼프와 거의 일치한다. 그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절친하다는 것도 강점이다. 확고한 트럼프 지지자인 머스크는 트럼프 캠프에 최근까지 1억3200만달러(약 1837억원)를 지원했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EU 본부 청사 모습. 연합뉴스

트럼프와 잘 통할 것으로 여겨지는 EU 지도자들이 대체로 극우 성향이란 점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라고 DW는 지적했다. 올해 유럽의회 의원 선거를 비롯해 프랑스와 영국의 총선, 그리고 독일의 지방선거에서 극우 세력이 크게 약진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재집권이 유럽의 극우 진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며 “이는 27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EU의 분열을 초래함으로써 유럽의 이익을 해칠 가능성이 크다”고 염려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