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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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만난 박단 “내년에도 전공의·의대생 안 돌아가… 2025년 증원부터 철회해야”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할 생각 없어”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대표에 이어 야당 대표까지 만난 전공의 대표가 “내년 의대 증원부터 철회하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정치권이 대화 물꼬를 트겠다며 제안한 여·야·의·정 협의체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거듭 선언했고, “내년에도 전공의와 의대생은 병원과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8개월 넘게 이어진 의·정 갈등의 대화창구로 기대를 모은 협의체 출범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뉴시스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이재명 대표를 1시간 30분가량 면담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면서 “대한전공의협의회 일곱 가지 요구안도 변함없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이 대표와 현 사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의료 문제 전반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며 “또한 전공의 처우 개선과 업무 개시 명령 폐지 등 사직한 전공의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얼마나 단호한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문제가 벌어질지 전하고 왔다”고 전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과 앞으로도 종종 소통할 예정”이라면서 “내년 봄에도 전공의들과 학생들은 각각 병원과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7500명 의학 교육은 불가능하다. 2025학년 증원부터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년에 의대 증원에 반발해 학교를 떠난 의대생들이 복귀하면 신입생까지 포함해 예년의 두 배가 넘는 7500명이라서 수업이 힘들다는 것이다.

 

앞서 대전협은 2월에 전공의 집단이탈시 낸 성명에서 필수의료 패키지와 의대 2000명 증원 전면 백지화, 의사수급 추계 기구 설치,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불가항력 의료사고 부담 완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부당한 명령 전면 절회 및 사과, 업무개시명령 폐지 등을 요구했다.

 

박 위원장은 4월4일 윤 대통령을 135분가량 만난 뒤 SNS에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고 적었고, 8월20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를 비공개로 90분가량 면담한 사실을 여당에서 먼저 공개한 뒤 SNS에 “젊은 의사들의 요구는 일관적이다”며 “한 대표와 여당은 복잡한 이 사태의 본질을 세심히 살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을 설득해 주길 기대한다”고 적었다.

 

한 대표 주도로 추진 중인 여·야·의·정 협의체는 전공의 단체의 불참 재확인과 2025학년도 증원 철회 입장 고수로 출범에 차질이 예상된다.

 

여당은 일부 의료계 단체가 참여의사를 밝힌만큼 당장 협의체를 출범해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야당은 갈등의 핵심인 전공의들이 빠진 협의체는 무의미하다는 시각을 보였다.

 

박 위원장을 만난 이 대표 입장에 따라서는 야당이 빠진 여·의·정 협의체로 우선 출범할 가능성도 있지만, 여당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여·야·의·정 협의체로 출범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의료계에선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가 협의체 참석을 결정하면서 ‘무조건적인 자율적 의대생 휴학 승인’을 조건으로 내걸었는데, 정부가 ‘내년 복귀 조건부 휴학 승인’이라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면서 의료계에서도 협의체 참여에 부정적인 기류가 흐르고 있다. 한동안 협의체 출범 구성은 물론 출범 시기를 둘러싼 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한편,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교수 3000여명의 의견을 조사한 결과를 전날 공개하고 “의대생 휴학 승인 등은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선결 조건이 아니라 마땅히 시행돼야할 조치”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의대생 휴학 불허, 교육과정 단축 등은 부당한 간섭이라는 것이다.

 

전의교협·전의비가 전날까지 이틀간 전국 40개 의대 교수 3077명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교육부의 의대생 휴학 불허 행정지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98.7%는 ‘대학 자율성을 침해하는 잘못된 조치’라고 응답했다. ‘필요한 조치’라는 응답은 0.5%뿐이었다.

 

의대 교육을 6년에서 5년으로 단축할 수 있게 한 교육부 방침에 대해선 응답자 97.8%가 ‘의학교육 수준을 떨어뜨리는 조치’라고 했다.

 

교육부가 각 대학에 구체적인 수준으로 학칙 개정을 지시하는 것에 대해선 응답자 98.9%가 ‘대학 구성원이 학칙을 자율적으로 정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의학 교육 평가·인증에 관한 교육부의 시행령 개정을 두고는 96.5%가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역할을 무력화시키는 시도이므로 철회해야 한다’고 봤다.

 

앞서 교육부는 대규모 재난 등으로 의대 등의 학사 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경우 의평원이 불인증 하기 전 의대에 1년 이상의 보완 기간을 부여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고등교육기관의 평가·인증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령안을 지난달 입법예고했다.

 

의대 교수들은 ‘현 의료 상황이 지속될 경우 2025 대입 전형(면접관 등)에 참여할 여력이 있느냐’는 질문에 89.8%가 여력이 없다고 했다.

 

전의교협과 전의비는 “정부는 교육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조치들을 중지해야 한다”며 “의대생 휴학 승인, 의평원 관련 시행령 개정안 철회는 (의사들의)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선결 조건이 아닌 마땅히 시행돼야 할 조치”라고 주장했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