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중국 사이에 ‘이상기류’가 감지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주중 한국대사관 국정감사에서 정재호 대사는 최근 ‘미묘한 변화’가 관측된 북·중 관계와 관련한 질의에 “미묘한 징후가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지난 70여년 중·북 관계를 돌아보면 매우 악화했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기도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섣부른 판단은 내리지 않으려고 한다”고 답했다.
실제로 북·중은 6·25전쟁 참전을 바탕으로 한 ‘피로 맺은 전우애’를 강조하면서도 북핵 문제, 장성택 처형 등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사이가 틀어졌다가 다시 개선되기를 반복하곤 했다. 최근의 이상기류설도 이 같은 흐름의 일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왕야쥔(王亞軍) 북한 주재 중국대사는 지난 25일 평양에서 6·25전쟁 참전 74주년을 기념했다. 중국군이 압록강을 넘어 6·25전쟁에 참전한 것은 1950년 10월19일이지만 중국은 첫 전투를 치른 그해 10월25일을 참전 기념일로 삼고 있다. 그는 중국 외교관과 중국 기업·매체 관계자, 북한 내 화교·유학생 대표 등 60여명을 이끌고 평양에 있는 중·조우의탑에 헌화하며 6·25전쟁에 참전한 중국군을 추모했다.
왕 대사는 “올해는 신중국 성립 75주년이자 중·조(중·북) 수교 75주년으로, 중국과 중·조 관계에 중요한 의의를 갖는 해”라며 “74년 전 중국군은 ‘보위 평화·침략 저항’의 정의로운 기치를 높이 들고 항미원조(미국에 맞서고 북한을 도움) 작전에 나섰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북한 간부들과 중국 대사관 관계자들이 함께 우의탑을 방문했지만 올해는 따로 추모행사를 가지며 소원해진 양국 관계를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관영매체들도 다소 조용한 목소리로 참전 74주년을 기념했다. 전반적인 기념일 분위기는 북한에 대한 지원보다는 미국에 대한 저항에 초점이 맞춰졌다. ‘원조’보다 ‘항미’에 집중한 셈이다.
최근 북·중의 어색한 관계는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하는 탓이 크다. 중국은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으로 난처한 상황에 몰렸지만 실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도 나왔다.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이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약화한다는 것이다.
국제정치 분야 권위자인 스인훙(時殷弘) 중국 런민대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중국이 북·러 군사동맹에 대해 상당히 불안해하면서 분노했을 것”이라며 “북한이 한반도에서, 그리고 이제는 유럽 전장에서 매우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음에도 중국이 북한에 경고하거나 간절하게 부탁하는 공개적인 언행을 하지 않았다는 점도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북한군 파병에 대해 중국이 불편할 수 있다는 예상을 내놨다. 그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진행된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중국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북·러 야합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파병에 대해 편하지 않은 심정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며 “한·미·일 3국은 중국이 러시아와 북한의 불법적 행동에 대해 좀 더 건설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중국과 가까워진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2015년 공개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1962년 대통령 일일 정보보고 문건에는 중국과 소련의 분쟁에서 한동안 줄타기를 하던 북한이 친중 노선으로 선회하는 과정이 포함됐다. 보고서는 “북한이 담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북한이 양측의 편을 가르는 담벼락 위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중국 편을 들지 결정하려는 것 같다고 짚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북한은 담벼락에 올라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넘어 북한의 균형추가 러시아로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런 기류는 북한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점에서 우려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입장에서 이를 기회 삼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중국은 “불법 입국자는 난민이 아니며 그들은 중국법을 위반하고 중국의 출입국 관리를 방해하고 있다”는 주장을 반복하며 탈북민을 강제북송하고 있는데, 중국과 북한의 이상기류를 바탕으로 이런 관행에 변화를 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