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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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단식(斷食) 민주주의

균형 잃은 민주주의… 단식으로 호소하다

제4대 세종특별자치시장으로, 지난 10월6일부터 11일까지 엿새간 생애 처음 단식(斷食)을 결행했다. 광역단체장이 단식에 나선 사례로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단식의 표면적인 이유는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관련 예산 문제였다. 시장 핵심 공약사업으로 추진해 온 박람회를 2년여 남겨둔 시점에 세종시 의회가 행사에 관한 예산을 전액 삭감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았고, 정부예산까지 예산안에 지원이 약속된 사업이었다.

최민호 세종시장

시의회의 결정에 논리와 명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민의 선택을 받아 선출된 시장의 핵심 공약이자 까다로운 중앙정부의 심사라는 전문영역에까지 여소야대의 지방의회가 중단 결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도 다수결로 결정되었다. 그를 잃은 인류의 지성적 손실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여소야대의 시장이 단식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했지만 결과는 또 변함없었다. 당론으로 부결이었다. 중앙정치의 판박이라는 아픔만을 가중시켰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의회와 대통령이나 장은 엄연히 역할의 구분이 있다. 헌법적 원리이다. 인사, 조직, 예산은 장이 국정 또는 시정을 이끄는 데 필수적인 권한이자 책임이다. 그런데 장의 인사와 조직의 제동, 나아가 예산안 전액 삭감이라는 의결로 다수당이 저지한다면 장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대항할 단체장의 ‘균형’적 수단은 매우 미미하다.

사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든 자치단체장이든, 여소야대라는 구조가 계속된다면 여야가 바뀐들, 우리의 정치는 ‘발목잡기’로 누구든 무엇이든 나아갈 수가 없을 것 아닌가. 속성상 정치는 국민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려 하고, 행정은 국민에게 ‘옳은 일’을 하려 한다. 이 지점에서 정치가 행정을 압도한다면 우리의 앞날은 포퓰리즘이 그저 승리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견제가 균형을 압도하는 사회. 우리나라는 이런 민주주의 제도의 덫에 걸려 있다. 차기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중앙이든 지방이든 반대를 위한 반대가 판을 치고, 극심한 정치적 대립에 온 국민이 진저리치고, 지방에서조차 지역발전보다 진영논리를 앞세우는 정치. 기초단체장 선거에 대통령에 대한 정권 심판론이 거론되며, 중앙정치가 타지의 지방의원들까지 동원해 다른 지역 선거를 돕는다.

필자는 이 나라 지방자치를 ‘정치자치’가 아닌 ‘생활자치’로 근본을 삼아야 한다는 이념으로 초기 지방자치법을 기초했던 전문가로 자부한다. 지금은 지방자치의 일선 책임자가 되어 있지만 단식 내내, ‘이러자고 지방자치를 하였나’라는 번뇌에 주린 속이 아팠다. ‘균형’을 위해 단식할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 정녕 ‘민주주의는 민주정치의 과잉에 의해 망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진리였단 말인가.

 

최민호 세종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