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日 여성'이라며 40대 男에 투자 권유…1억 편취한 '로맨스스캠'

#. 40대 남성 김정진(가명)씨는 지난 9월 중순께 텔레그램을 통해 일면식 없는 여성 A씨의 연락을 받게 됐다.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소개한 A씨는 김씨에게 이성적 호감을 느낀 것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건네며 김씨의 경계심을 풀었다.

 

두 사람은 한 달간 연락을 주고받으며 호감이 쌓였다. 그러자 A씨는 김씨에게 '테무나 알리바바 같은 쇼핑몰에 투자를 하면 원금에 이자까지 고수익을 보장해 주겠다'고 제안했고, 김씨로부터 약 1억 원을 편취한 뒤 연락을 끊었다.

 

김씨는 한동안 애정을 느끼며 연락하던 상대가 사기범이라는 사실에 허탈감을 느껴야만 했다. 김씨는 "연애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아 대화를 하면서 (사기를) 의심하진 않았는데, 돈을 보내고 나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2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도봉경찰서는 A씨의 범죄 사례를 이른바 '로맨스스캠(romance scam)' 형태로 보고 최근 수사에 착수했다. 자신을 일본 여성이라고 소개하며 40대 중년 남성에게 사기를 친 전형적인 로맨스스캠 범죄라고 규정한 것이다.

 

로맨스(사랑)과 스캠(사기)의 합성어인 로맨스스캠은 연애를 빙자해 돈을 가로채는 신종 전기통신금융사기다. 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데이팅 앱을 통해 이성 혹은 동성에게 접근해 친분을 쌓은 뒤 금전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경찰청이 올해 2월 통계 집계를 시작한 로맨스스캠 범죄는 지난 8월까지 총 920건, 545억 원(월평균 131건·78억 원)의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로맨스스캠 범죄 특성상 '사기범에게 애정을 느끼고 속았다'는 사회적 비난에 대한 두려움, 피해회복에 대한 회의감으로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 실제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로맨스스캠은 국제적·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방첩과 대테러, 산업보안 등 굵직한 업무를 담당하는 국정원이 그간 로맨스스캠을 수사해 온 이유도 '국제 범죄'여서다.

 

범죄 조직 상당수가 해외에 기반을 둔 탓에 수사기관은 실체 파악과 조직 검거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일선서 경찰 관계자는 뉴시스에 "피해자들이 제출한 증거자료로 피의자를 특정할 수 있는 사안은 최대한 추적하고 있다"면서도 "주로 해외에 서버를 기반을 두고 있어 인터폴 공조 요청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SNS과 데이팅앱 활용에 익숙한 20~30대 젊은 층이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지만 외로움에 취약한 중장년층도 예외는 아니다. 경찰학연구소가 2019년 발표한 '로맨스스캠 범죄 현황 및 대응방안에 관한 고찰' 논문에 따르면 40~60대 중장년층과 노년층에서 피해자와 피해금액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피해 이유를 두고 "이혼 또는 배우자와 사별했거나, 늦은 나이까지 결혼하지 못해 외로운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만난 이성에게 직접 만나지도 않고 사랑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사회적으로 로맨스스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한편, 국제적이고 조직적인 범죄인만큼 경찰의 국제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은 "범행 수법을 비롯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홍보하기 위해서는 신고를 격려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면서도 "결국 신고도 피해회복이 이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경찰이 해외에서 해당 범죄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국제 공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