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는 1년 안에 물러날 수 있다.” 전 자민당 부총재 아소 다로(麻生太?)가 지난 9월의 자민당 총재선거 이후 2위를 차지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의원에게 한 말이다. 아소의 말대로 자민당 역사에서 3년 이상 총리를 지낸 사례는 7명밖에 없다. 일본 정국은 그의 예측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27일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연립 상대인 공명당과 함께 과반수 확보에 실패, 소수 여당으로 전락하면서 이시바 정권은 출범 이후 약 한 달 만에 위기에 빠졌다. 앞으로 일본 정치는 이시바 정권을 두고 자민당 당내 세력, 그 외 야당세력 간 경쟁하는 국면으로 진입했다. 이시바 정권의 앞날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중의원 선거 결과는 자민당은 물론 이시바 정권을 향해 일본 국민이 내린 엄중한 심판이었다. 이시바는 자민당 내 비주류로 쓴소리를 마다치 않는 정치인이었다. 일본 국민은 이시바 총리가 비자금 문제 등으로 자정 작용을 잃은 자민당에 변화와 쇄신을 가져오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시바 총리는 총재선거 때의 공약과는 달리 당내 융합을 위해 비자금 문제 의원들을 공천하려 하면서 흔들렸다. 게다가 비자금 문제로 공천을 받지 못한 후보자가 대표로 있는 당 지부에 ‘뒷돈 공천금’ 2000만엔을 지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시바 정권을 향한 역풍은 더 커졌다. 벌써 자민당 내에서는 이시바 총리로는 내년 7월의 참의원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회의론이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이시바는 사임을 거부했지만, 조만간 차기 총재 자리를 두고 자민당 내 권력 투쟁이 벌어질 것임이 분명하다. 그때를 가늠하자면 내년 3월 예산안이 확정되고 참의원 선거가 시야에 들어오는 시기이다. 우선 주목해야 할 인물은 앞서 언급한 아소와 다카이치다. 지난 총재선거에서 아소는 다카이치의 뒷배였다. 다카이치는 이시바 정권의 입각 제안을 거부하면서 비주류를 자처했다.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자신을 지원한 구 아베파 출신이 대거 낙선한바, 다카이치가 차기를 노리기 위해서는 아소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아소가 또 한 번 다카이치를 지지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총재선거 때와는 달리 현재 자민당은 소수 여당으로 전락하여 새로운 국면에 있기 때문이다. 향후 국정을 이끌기 위해서는 야당과의 협력이 필수적인데, 극우 성향의 다카이치는 그 부분에서 의문 부호가 붙는다. 따라서 아소가 다른 카드를 가지고 나올 수 있다.
일본 국회로 시선을 돌리면 자민당과 공명당이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여당과 야당 간 백중세가 펼쳐질 것이다. 자민당 1강 시대와는 달리 소수 여당인 이시바 정권의 자민당은 국정 운영을 위해 야당과의 연대가 필수적이다. 야당의 상황을 보면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250석으로 반수 이상을 차지, 의석수로는 정권 교체도 가능하다. 하지만 중의원 선거에서 야당 간의 후보 단일화는 289개의 선거구 중 53개에 그칠 정도로 야당 간의 결속력은 느슨하다.
결과적으로 남은 시나리오는 자민당과 입헌민주당을 축으로 두고 정책과 의제에 따라 다수파 만들기, 이합집산이 펼쳐지는 것이다. 굉장히 유동적인 정국에 처할 수 있는데, 여야 당이 동적 균형(Dynamic Balancing)을 찾지 못한다면 국정 운영이 경색될 수 있다.
내년 한국과 일본은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는바, 양국은 지금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한·일 관계가 개선되면서 일본 정치권에서 여야 당을 막론하고 한·일 관계의 중요성은 널리 인식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시바 정권이 불안정해지고 일본 정치에서 잦은 리더십 교체, 약한 총리의 시기가 닥쳐온다면 일본의 대한국 외교는 그저 관성에 따라 현상 유지에 그칠 수 있다. 한국과의 협력을 추구하지만 경로 의존성에 빠진 일본의 대한국 외교.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는 한국이 직면할 수 있는 난제가 될지 모른다.
윤석정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