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결국 뒷걸음친 정부… 2025년 7500명 교육 ‘비상상황’ 올 수도 [의대생 휴학 자율 승인 허용]

교육부 입장 선회 안팎·향후 전망

의료계 “정작 필요할 때 양보하지 않다가
상황 악화 뒤 물러서… 신뢰 잃어” 지적

의평원 “교육 파행 한 해로 끝나지 않아”
정부 “충분히 대비하면 가능해” 낙관론

정부가 의대 증원에 반발해 학교를 떠난 의대생들의 휴학을 ‘내년 복귀 조건부로 승인하겠다’는 방침을 접고 개인적 사유에 의한 휴학 신청은 대학 자율 판단에 따라 승인을 허용하기로 했다. 정치권 제안으로 논의가 시작된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키로 한 의료계 단체 등의 요구를 수용하는 형태이지만, 여야 간 이견 등으로 한때 주춤했던 협의체 출범 동력이 되살아났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다만 8개월 넘게 이어진 의·정 갈등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주요 방침·정책을 쉽게 거둬들이거나 바꾸면서 신뢰를 잃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실행 불가능한 대책을 꺼냈다가 뒤늦게 물러서길 반복하면서 사태를 악화시킨 것 아니냐는 것이다. 아울러 휴학 승인으로 내년에 평소의 2.5배인 의대생 7500명을 한꺼번에 교육해야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현실화하는 데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뉴스1

◆의대생 이탈 8개월 만에 휴학 허용

 

교육부는 29일 의대생 개인 사유에 의한 휴학 신청은 대학 판단에 따라 승인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의대생들은 정부 의대 증원에 반발해 2월부터 휴학계를 내고 복귀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초 기준 전국 40개 의대에서 2학기 등록금을 낸 인원은 653명으로 전체 1만9000여명의 3.4%에 불과하다.

 

정부는 의대생 연내 복귀가 사실상 힘들어지자 “2025학년도에 복귀한다고 하면 휴학을 승인하겠다”는 비상대책을 내놨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휴학 허용’으로 선회했다. 정치권에서 제안한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 의사를 밝힌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가 의대생 휴학을 조건으로 내걸면서 결국 방침을 바꿨다는 분석이다.

29일 서울 시내의 한 의과대학 출입문 안쪽으로 관계자의 모습이 눈에 띈다. 이날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의대를 운영하는 40개 대학교 총장은 영상 간담회를 갖고, 수업에 미복귀한 의대생의 ‘조건 없는 자율 휴학’을 승인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극단에서 물러서는 정부”

 

의대생 미복귀 시 대규모 제적·유급이 불가피한 상황에 부닥치자 결국 기존 방침에서 물러선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의·정 갈등 초기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의 복귀를 촉구하면서 이탈 장기화 시 면허 정지 등 행정처분 가능성을 수차례 언급했지만 수개월 뒤 처벌을 유예한다고 밝혔고, 이어 아예 처벌 방침까지 거둬들였다. 2월부터 이어진 2000명 증원 불가 방침도 4월에 학교별로 모집 인원을 최대 증원분의 50%까지 줄일 수 있도록 변경했고, 내년 증원 규모는 결국 2000명이 아닌 1509명으로 확정됐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서 “2000명 증원 규모는 타협대상이 아니다”라고 수차례 강조했지만, 최근엔 “2026년 의대정원은 논의 가능하다”고 선회한 상황이다.

 

한 의료계 인사는 “전공의·의대생들은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놓고 물러서는 데 대해 ‘양보한다’고 받아들이지 않고 ‘믿을 수 없다’고 여긴다”며 “정작 필요할 때 양보하지 않고 상황이 극단으로 악화한 뒤에 어쩔 수 없이 물러서는 건 의료 사태를 악화시킨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휴학 딜레마’, 7500명 교육 가능할까

 

정부가 그간 의대생 휴학을 최대한 막으려 한 것은 ‘동맹휴학 불인정’ 방침 외에도 휴학이 이뤄지면 내년 4500명(기존 3000명+증원 1500명) 교육에 휴학생 3000명이 더해져 기존의 2.5배인 7500명을 교육해야 하는 ‘비상 상황’이 불거질 수 있어서다. 의대생 일부가 군에 입대하더라도 평소 2배의 의대생이 쏟아지는 만큼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 대학 안팎에서 나온다.

 

여기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이 내년에 증원되는 의대들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겠다고 나섰고, 교육부가 의평원의 불인증 평가를 1년 유예하는 것을 의무화하자 의료계가 다시 반발하면서 의대생 교육을 둘러싼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재진 의평원 부원장은 “한 나라에서 의대 정원이 2배 내지 3배로 늘어서 교육을 시작하고 그렇게 5~6년 가야 하는 상황은 전 세계 의대 역사상 처음일 것”이라며 “내년엔 교육 파행이 벌어질 것이고 한 해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는 7500명 교육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최근 “7500명이 거대해 보이지만 전국 40개 의대에 나눠지고 예과 1학년이 겹치는 정도의 교육이고 예과 1학년 커리큘럼은 대부분 강의 위주이고 실습은 거의 없다”며 “분반 등을 하고 정확한 인원을 산정해 충분히 대비하면 가능하다”고 했다.

 

교육부도 학사일정 조정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의대생이 7500명으로 늘어나는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했는데 교육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내년에 교육 대상 학생이 크게 증가하겠지만 각 의대들과 미리 준비하면 무리 없이 교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29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연합뉴스

◆협의체 ‘첩첩산중’… “첫 안건 ‘2025년 정원’”

 

대한의학회·KAMC의 참여 조건이 충족되면서 협의체 출범에 힘이 더해지겠지만 여야 간 이견이 해소되어야 하고 향후 협의에도 진통이 예상된다.

 

이진우 대한의학회 회장은 이날 통화에서 의대생 휴학 승인 후 우선 논의할 안건으로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꼽았다. 그는 “협의체 참여를 알리며 나열한 5가지 핵심 논의사항 범주 내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면서도 “더불어민주당도 빨리 협의체에 참여해 논의하면서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 “책임 있는 당국자가 협의체 출범 시 유감이나 사과 표명을 하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학의학회와 KAMC는 협의체 참여 선결조건인 의대생 휴학 승인 외에 △2025·2026년 의대 정원 논의 및 의사정원 추계기구 입법화 로드맵 설정 △의대생 교육 및 전공의 수련 기관의 자율성 존중 및 교육·수련 내실화 △의평원 독립성·자율성 확보 △의료개혁특별위원회 개편 등 5가지 현안들이 진정성 있게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2025년 정원은 수능이 임박한 상황이라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고, 전공의·의대생들은 2025년 증원 백지화를 고수하고 있다. 이 회장은 “협의체가 출범해도 갈 길이 멀다”며 “하나하나 풀어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보건복지부가 이날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 2차 참여기관으로 10곳(강남세브란스병원·길병원·단국대병원·부산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아주대병원·칠곡경북대병원·한림대성심병원·한양대병원)을 선정해 총 18곳이 됐다. 이로써 전체 상급종합병원 47곳 중 40%가량이 중증도와 난도가 높은 환자의 치료에 집중하는 구조전환 사업에 착수한다.


정재영·김유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