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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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논술 유출’ 공방…“공정성 붕괴” vs “재시험 불가”

2025학년도 수시모집 자연계열 논술시험 시험문제 사전 유출 논란에 휩싸인 연세대를 상대로 수험생들이 제기한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 첫 심문에서 수험생 측과 학교 측이 시험의 공정성 훼손 여부와 재시험 필요성 여부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수험생 측은 대학의 관리 부실로 문항 일부가 시험 시작 전에 노출됐고, 사실상 시험의 의미를 가질 수 없을 만큼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연세대 측은 문항 유출의 실체가 뚜렷하지 않고, 설령 일부 수험생의 일탈이 있었다 해도 이를 재시험 시행 사유로 볼 수는 없다고 맞섰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의 모습. 뉴스1

◆72고사장 문제지 사전배부 시간 “20~30분” vs “길어야 3분”

 

서울서부지법 민사21부(재판장 전보성)는 29일 오후 연세대 논술시험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의 첫 심문을 진행했다. 소송은 연세대 수시에 응시한 수험생 18명이 제기했다. 여기에 진술서를 내는 등 간접적으로 힘을 보탠 인원은 50명을 넘어선다. 수험생 측은 당초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시험 무효’를 요구했지만 최근 ‘재시험 이행’으로 청구 취지를 변경했다. 

 

양측은 문제 유출 사태가 벌어진 72고사장의 당일 ‘타임라인’을 두고 먼저 다퉜다. 수험생 측은 당시 72고사장에 있었던 수험생들이 20~30분 동안 문제지를 볼 수 있었다고 주장했고, 연세대 측은 이 시간이 기껏해야 3분 정도였다고 주장했다. 

 

연세대 측은 72고사실 감독관이 QR코드를 통해 수험생 신원확인을 마친 기록과 감독관의 휴대전화 통화기록 들며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 전 문제지를 갖고 있었던 시간은 최대 3분 정도였다고 주장했다.

 

수험생 측은 시험지를 배부하고 회수하는 과정이 순차적으로 이뤄져 수험생마다 20∼30분 동안 문제를 확인할 시간이 있었다고 받아쳤다. 시험 시작 전 과외 교사에게 문제지의 일부 문항을 촬영해 보내 풀이 방법을 얻어냈다는 수험생 진술도 공개됐다. 이에 대해 연세대 측은 “(시험) 당시 나눈 카톡이 아닌 사후 진술에 불과하며, 객관적인 증거가 아니다”라며 반박했다. 

 

2025학년도 연세대학교 수시 논술 시험 문제 사전 유출 논란과 관련해 수험생과 학부모 측 집단 소송 대리인인 김정선 변호사가 29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논술시험 효력 정지 가처분 소송 첫 재판을 마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공정성 훼손…재시험 불가피 vs 사립대 재량…선의의 피해자 양산

 

이어 연세대 측은 과외 교사에게 문제를 유출한 사례가 사실로 확인된다 해도 재시험을 치를 정도의 사안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수능에서 유사한 부정행위가 적발되어도 해당 학생들에 대해 제재를 가할뿐 수능을 다시 치르지는 않는다는 시각에서다. 

 

연세대 측은 “(72고사장에서) 문제지를 나눠주기 전 감독관이 시험 시작 전에 보는 것은 부정행위라고 고지했고, 학생들을 계속해서 응시하며 감독했으므로 부정행위가 발생했다 해도 학생 개인적인 일탈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수험생 측은 상당 시간 동안 문제지를 미리 보고, 촬영하고, 공유하는 행위가 감독관 제지 없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며 “입시 공정성이 크게 훼손돼 시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수준”이라며 재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맞받았다. 

 

이에 대해 연세대 측은 “문제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재시험 실시 여부는 사립 교육기관이 광범위한 재량에 의해서 결정할 사항”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만약에 재시험을 치르게 된다면 성실하게 규정을 지켜서 합격 점수를 얻은 수험생들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된다”며 “촉박한 대입 전형 일정을 고려할 때 (재시험이 치러질 경우) 전국적으로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양측으로부터 심리에 필요한 자료를 추가로 제출받은 뒤, 다음달 15일 전까지 판단을 내리겠다는 입장이다. 연세대는 관례적으로 수시 논술전형 결과를 매년 수능시험 다음날 발표해왔는데, 올해 11월14일 치러지는 수능 일자를 고려해 결정을 내겠다는 취지다.

 

수험생 측 법률대리인인 일원법률사무소 김정선 변호사는 이날 심문이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시험이 공정하게 치러지지 않은 원인을 제공한 연세대가 경찰과 로펌을 동원해 책임을 학생들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문제가 된 전형이) 논술 100% 전형인 만큼 수능에 준하는 관리·감독이 필요한데도, 마음껏 항의하지 못하는 수험생의 약점을 이용해 관행적으로 태만하게 운영했다”고 말했다.

 

연세대의 고발로 시작된 시험지 유출에 따른 업무방해 혐의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연세대 시험문제 관련 자료가 게시됐던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서울 강남구 본사를 전날 압수수색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연세대는 논술시험 문제가 온라인에 유출됐다는 논란이 일자 문제지 등을 촬영해 커뮤니티에 게시한 수험생 2명과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4명 등 6명을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