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대화방에서 상대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는 이유만으로는 모욕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해당 표현이 나오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명예를 침해할 만했는지를 엄격히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모욕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이달 8일 파기환송했다.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 조합원이던 A씨는 2019년 12월부터 이듬해 4월 사이에 70여명이 있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추진위원장을 비난하는 메시지를 13차례 보내 모욕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추진위원장을 두고 “도적X” “흑심으로 가득한 무서운 양두구육의 탈을 쓴 사람” “법의 심판을 통해 능지처참시켜야”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조합원의 돈을 착취” 등의 표현을 썼다.
당시 조합원과 추진위원장은 조합설립인가의 신청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었다. 당초 추진위는 인가 신청을 했다가 관할 시의 보완자료 요구에 신청을 취하했고 이후 1년 가까이 재신청 절차를 밟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추진위가 조합원들에게 회계 서류를 공개하지 않았고, 추진위원장 배우자가 대표로 있는 업체 등이 과도한 이익을 취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A씨를 비롯한 불만을 가진 조합원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했고, 문제가 된 표현들도 비대위 채팅방에서 나왔다.
1·2심 법원은 A씨의 글 13건 중 9건이 추진위원장을 공연히 모욕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A씨가 메시지를 보낸 맥락 등을 고려할 때 그의 표현이 모욕죄로 인정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봤다. 이 사건 메시지가 비대위 대화방에서 나온 점이나 A씨가 추진위원장의 불법행위를 알리고 대응방안을 설명하려고 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문제 글은)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비판적 의견이나 감정이 담긴 경미한 수준의 추상적 표현 또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는 무례한 표현이 담긴 글에 해당할 뿐”이라며 “피해자의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표현이 포함된 글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모욕죄의 성립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판례는 표현이 다소 과격하고 무례했더라도 표현이 사용된 맥락을 고려해 상대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것이 아니라면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