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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찾으려면 돈 뽑아와”…고령자 울리는 보이스피싱 피해 급증

고령자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 704억원
농협은행·농축협 보이스피싱 피해액 증가
‘금융소비자법’·‘노인복지법’ 개정안 발의
“금융회사 임직원을 신고‧통보 대상자로”
고령자 대상 보이스피싱 범죄 급증. 세계일보 그래픽

 

지난해 초 70대 여성 A씨는 아들이 납치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우체국을 찾아 2400만원을 출금하려다 보이스피싱을 의심한 우체국 직원의 제지를 받았다.

 

같은 달 80대 남성 B씨는 “아들을 붙잡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협박범에게 현금 495만원을 건넸다.

 

경찰에 신고해 아들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보이스피싱 사기임을 몰랐던 B씨는 이미 수백만 원을 빼앗긴 뒤였다.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60대 이상의 피해 금액이 700억원대를 넘어서며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령자가 경제적 착취나 금융 피해를 입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어 이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3월 발표한 ‘2023년 보이스피싱 피해현황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1965억원으로 2022년과 비교해 514억원(35.4%) 증가했다. 1인당 피해액은 1700만원으로, 2022년 1100만원보다 54.5% 늘어났다.

 

2023년 연령별 보이스피싱 피해금액 현황. 금융감독원 제공

 

다른 연령대에 비해 고령자의 피해 금액이 가장 컸다.

 

지난해 피해구제 신청 접수 기준 60대 이상의 피해 금액은 704억원으로 전체의 36.4%를 차지했다. 이어 50대 560억원, 40대 249억원 등의 순이었다.

 

어르신들이 주요 고객인 농협은행과 지역 농·축협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금액도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은행에서 최근 5년간 발생한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은 각각 1817억원, 3125억원에 달한다. 이들 기관의 통합 피해액은 2019년 1인당 1413만원 수준에서 2023년 2092만원으로 불어났다.

 

고령 인구 급증에 따라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 행각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지만, 고령자 대상 사기를 방지할 수 있는 규정은 현재 없는 상황이다.

 

현행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과 ‘노인복지법’은 고령자 대상 금융사기 등의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법 규정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 또 노인 학대의 범주에 경제적 착취를 포함하고 있을 뿐 경제적 착취의 개념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온라인 거래나 디지털 정보에 취약한 고령자가 은행 점포를 이용하는 주 고객층이라는 현실을 감안하면 은행 등 금융기관 직원들이 고령자 대상 금융사기에 신속히 대처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된다.

 

보이스피싱 범죄 급증. 세계일보 그래픽

 

이에 관련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발의됐다.

 

금융소비자법 개정안에서는 고령 금융 소비자와 금융 피해의 정의를 명시하고, 금융상품 판매업자등이 고령 소비자의 금융 피해 의심 사안을 신속한 법 집행기관이나 금융 감독기관에 통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금융 피해 예방을 위해 거래 지연조치 및 제3자에 대한 통보 조치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신설함으로써 고령 금융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신속하고 효과적인 금융피해 대응을 가능하게 했다.

 

노인복지법 개정안에서는 경제적 착취에 대한 개념을 구체화하고, 금융 회사 등의 임직원을 노인 학대 신고 의무자로 규정하는 내용을 신설함으로써 금융소비자법 개정안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을 발의한 김정호 의원은 “고령층의 금융 손실은 경제적 회복이 어려워 향후 가족 및 사회 전체에 지속적인 경제적‧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 연령대에 한정된 문제로 볼 수 없다”며 “고령자 대상 금융사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금융사기 및 경제적 착취 피해를 근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윤진 기자 sou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