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당구 여제’ 김가영 “앞서 나가 길 닦을 것…뚫고 지날 후배 나오길”

“살짝 기쁘긴 했는데 경기력이 아쉬워서 그날 새벽까지 훈련했어요.”

 

프로당구(PBA·LPBA) 투어 최초로 10승을 거둔 김가영(41·하나카드)의 목소리는 명랑했다. 27일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휴온스 LPBA 챔피언십 결승에서 권발해(20·에스와이)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해서가 아니었다. 이 경기에서 만족스럽지 못했던 샷을 찾았고 연습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었다. 28일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김가영은 “이번 경기에서 옆돌리기 실수가 너무 많아 시상식이 끝나고 곧바로 연습했다”며 “풀리지 않는 게 있다면 해결될 때까지 쳐야 편안하게 잠을 자는 스타일인데 이제 원인을 어느 정도 파악한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웃었다.

 

지난 대회 정상에 선 김가영은 올 시즌 치른 5차례 투어 가운데 3번째 우승이자 3개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또 PBA·LPBA 최초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게 됐다. 10승은 프로당구 역사상 처음이다. PBA에서 당구황제로 군림했던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의 8승은 이미 넘어섰고 LPBA에서 맹렬하게 추격하던 ‘캄보디아 특급’ 스롱 피아비(7승)와 격차도 벌려놨다. 하지만 김가영은 기록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김가영은 “일주일 뒤 또 경기가 있는데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생각하고 있을 뿐”이라며 “동생이 그러던데 어머니께서 지난 경기를 보시다가 ‘쟤 오늘 왜 이렇게 못친다냐’라고 하셨을 정도였으니 다음엔 꼭 좋은 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가영은 중학생이던 1997년 당구선수가 됐다. 김가영은 “유도선수 출신인 아버지가 당구장을 운영하셨고, 취미로 당구를 시작했다”며 “재능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치다가 포켓볼 프로 선수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돌아봤다. 김가영에게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다. 김가영은 “2004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세계대회 우승으로 받은 상금이 7000달러였는데 경비 등을 빼면 남는 게 없었다”며 “세계에서 가장 당구를 잘 치는 사람이 되면 영화(富貴)는 몰라도 부귀(富貴) 정도는 누릴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김가영은 꿈을 이어갔다. 김가영은 “할 줄 아는 게 당구밖에 없어서 포기하지 못했다”며 “그러다 보니 우승도 계속하게 됐고 스폰서도 생겨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후 당구 시장은 커졌고, 한국에서 프로당구도 출범했다. 김가영 같이 뛰어난 선수들이 척박한 세계에서 버텨나간 덕분이다. 우승상금 7000달러를 받았던 김가영은 올 시즌에만 1억2090만원의 상금을 챙겼다. 누적상금은 4억6180만원으로 랭킹 1위에 올라있다. 이런 김가영의 뒤를 따라 많은 선수도 프로의 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김가영은 “어린 선수가 많이 나오는 걸 보면서 뿌듯하기도 하고 이 선수들이 너무 예뻐 보이고 또 부럽다”며 “어떻게 보면 언젠가 분명 나도 물러나야 할 시기가 올 텐데, 선배로서 길을 닦으며 저 멀리 앞서 나간 뒤 나를 뚫고 지나갈 후배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했다.

 

김가영은 온통 당구 생각 뿐이었다. 체력을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필라테스와 수영 등을 취미 삼아 당구에 필요한 근육을 단련했다. 당구와 결혼한 것일까. 김가영은 웃으며 “절대 아니다”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김가영은 “연애도 꾸준히 하고 있고, 충분히 즐기면서 지내는 중”이라며 “인생의 목표인 행복하고 건강하게, 주변 사람들 잘 챙기면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가영은 당구가 늘지 않는 아마추어 당구인들을 향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김가영은 “처음부터 최성원(휴온스)처럼 치겠다고 마음먹으면 당구가 재미없을 것”이라며 “공을 맞히는 데 집중해서 즐거움을 먼저 찾고, 연습했던 게 안 되더라도 짜증 내지 말고 차분하게 즐기다 보면 당구가 늘 수 있다”고 귀띔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