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지고 있는 게 맞나.”
2018년 5월, 이도현(40)씨는 일주일 만에 10㎏이 쪘다. 몸이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걷기는커녕 몸을 일으키기조차 힘겨웠다. 눈을 뜨기가 어려웠고, 침이 입술을 타고 흘러 턱밑으로 떨어졌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 대부분이 겪는 약 부작용이었다. 증상이 악화하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도현씨는 마음을 다잡았다. ‘환자처럼 보이면 안 된다.’ 움직이는 법을 잊지 않으려 매점에서 커피를 사서 좁은 복도를 쉴 틈 없이 오갔다. 기상시간에 맞춰 오전 7시에 일어났고, 10시에 시작하는 재활 프로그램에 성심성의껏 참여했다.
하루빨리 병원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였다. 서른넷 당시 도현씨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장롱면허 탈출’, ‘한자 1급 자격증’, ‘연애’. 입원 기간 동안 도현씨가 작성한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는 37번까지 내려갔다.
입원한 지 오래된 사람들은 도현씨와 달랐다. 삶에 대한 의지가 없어 보였다. 도현씨 옆 병상을 쓰던 중년의 여성은 한 달이 넘도록 샤워를 하지 않았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기 온 지 몇 년 됐을 거야.” 여성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백발이 그 세월을 증명하는 듯했다.
10년 넘도록 병원에 사는 이들도 있었다. 한 50대 남성은 퇴원하면서 병원에 짐을 두고 나갔다. 나갈 때부터 돌아올 생각을 한 것이다. 병원 밖에 자신의 집이 없고 가족마저 없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딱 병동 문앞까지였다.
도현씨는 기자에게 자신의 정신병원 경험담을 전하며, 장기입원 환자들을 안타까워했다. 정신병원 입원은 ‘단시간에’ 양질의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입원해 있는 동안 사회와 단절되고, 장기화하면 사회 복귀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한국은 정신병원 ‘장기입원’의 나라다.
3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3개월 이상 정신병원에 장기입원한 환자는 1만9756명이다. 정신병원 입원 환자(10만4849명)의 18.8%에 해당한다. 장기입원자가 많은 탓에 한국 정신병원 평균 재원기간은 186.6일(2021년 기준)에 달한다. 조현병 등 망상장애 환자만 놓고 보면 194.7일로 더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로, 2위인 스페인(81일)의 2배가 넘는다.
세계일보는 정신병원 입원을 경험한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 14명과 가족 15명, 의료진 12명을 만나 정신질환자 치료의 현실을 들었다. 정신병원이 퇴원하지 못하는 장기입원자의 ‘집’이 된 사이, 정작 치료가 시급한 정신질환자는 입원할 병원을 찾지 못해 집에 머물고 있는 부조리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급성기 환자는 입원 못해 불안
“병상이 없대요.”
고정훈(가명·60대)씨는 지난해 8월 밤의 기억을 되짚었다. 그날 밤 그는 ‘턱’하는 둔탁한 낙하음을 듣고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머리맡에는 따지 않은 참치캔이 뒹굴고 있었고 그 옆에서 아들 고준형(가명·33)씨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준형씨가 조현병 치료약을 멋대로 끊은 지 몇 주쯤 지난 때였다. 준형씨는 약을 먹지 않으면 삽시간에 병세가 악화하곤 했다. 미국, 일본, 국가정보원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졌다. 그럴 때면 골프채로 집안 물건을 부수고 폭언을 쏟아냈다. 더 심한 행동을 보이기 전에 병원에 아들을 입원시켜야 했기에 정훈씨는 급히 경찰을 불렀다. 집에 도착한 경찰관은 정신병원에 전화를 돌렸지만, 수화기 너머에선 번번이 “병상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훈씨는 환청에 시달리며 발버둥치는 준형씨와 집에 있을 생각을 하니 막막하고 두려웠다. 그렇게 마음 졸이길 2시간. 준형씨를 받아주겠다는 병원을 찾은 뒤에야 정훈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최근 입원이 너무 어려워졌어요. 병원들이 다 병상이 없다면서 외래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해요. 외래진료를 갈 수 있을 정도의 환자는 애초 급성기가 아니어서 입원이 필요 없는데….”
준형씨처럼 자신이나 타인을 해칠 우려가 있는 ‘급성기’ 환자는 의료진이 24시간 지켜보고 출입에 제한이 있는 보호병동(폐쇄병동)에 입원하는데, 병동 병상이 계속 줄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보호병상은 5만4427개로, 2014년(6만3324개) 대비 8897개나 감소했다. 비율로는 14.1%, 즉 7개 중 1개꼴로 사라졌다. 특히 전공의들이 집단이탈한 2월 이후 보호병상 감소세가 심화했다. 전공의들이 수련받던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의 보호병상은 2월 796개에서 3월 759개로 줄었고, 6월에는 734개까지 감소했다. 병원들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는 보호병상 수를 904개로 신고해 두고 암암리에 병상 가동을 줄였다.
◆돈 잡아먹는 보호병상… 폐쇄 1순위
“병원장은 정신과에 병상을 주고 싶지 않겠죠.”
손지훈 서울대학교병원 공공진료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병원 집행부는 경영이 악화하면 정신건강의학과부터 찾는다. 정신과가 ‘돈 먹는 하마’이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원가보전율은 55%로 상급종합병원 진료과목 중 가장 낮다. 100원을 들여 환자를 치료했을 때 건강보험과 환자로부터 받는 돈은 55원에 그친다는 의미다. 환자를 볼수록 적자가 커지는 구조다.
정부가 올해 보호병동 집중관리료와 격리보호료 등 수가를 올려주긴 했지만, 병원은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병상 간 이격거리를 늘리면서 수용 환자 자체가 줄어든 데다, 기존에 있던 입원료 가산을 폐지하면서 생긴 손실을 보완하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정신병원에서도 급성기 환자가 입원하는 보호병동은 특히나 골칫거리다. 법적 문제에 휘말리는 일이 잦아서다. 증상이 심한 급성기 환자가 의료진을 폭행하는 일도 있고, 환자가 자신 혹은 타인을 해치지 않도록 강박했다가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특별히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증상이 심각한 급성기 환자와 안정적 상태에 있는 만성기 환자의 진료수가 차이는 미미하다. 병원의 수익구조에도, 진료를 보는 의료진 입장에서도 급성기 환자를 반길 이유가 없다.
의사들은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전국 상급종합병원 47곳 중 11곳은 아예 보호병동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 이 11곳에서 수련 중인 전공의는 급성기 환자를 경험하지 못한 채 수련과정을 마치게 된다. 강등현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서울형정신응급의료센터장)는 “보호병동이 없는 수련병원에 있었던 전공의는 급성기 환자의 입원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수련을 마친 뒤에도 보호병동이 있는 병원을 기피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급성기 수가 올리고, 만성기 환자 퇴원시켜야”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복지부는 급성기 정신질환자가 적시에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급성기 치료활성화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난도가 높고 자원 투입량이 많은 급성기 진료 특성에 맞춰 진료수가를 개선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참여기관은 7월 기준 42곳에 불과했다. 전국에 있는 상급종합병원 47곳 중 14곳만 참여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인프라 구축을 위해 계속해서 추가모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범사업 평가 연구용역을 진행한 김성완 전남의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참여율이 저조한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지금 수준의 수가 인상으로는 적자를 면하지 못해서 그래요.”
수가 보상을 강화해 급성기 환자 입원을 받게 유도한다는 게 사업 취지인데, 병원은 수가 인상분을 체감하지 못한다. 정부의 사업 참여 조건을 맞추려면 병원이 추가 인력을 채용해야 한다. 현재 상급종합병원은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전문의를 환자 60명당 1명꼴로 두고 있는데, 사업에 참여하려면 전문의를 3배(환자 20명당 전문의 1명)로 늘려야 한다. 늘어나는 인건비에 비해 보상 수가가 저조하다는 지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개선안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급성기 환자 치료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일이다. 일본의 경우 급성기와 만성기 병동을 구분해, 급성기 환자의 입원료를 일반 입원료의 2.5배 수준으로 책정하고 있다. 권준수 한양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도 급성기 수가를 조정해 보호병동에 충분한 인력을 배치하고, 입원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는 만성기 환자가 조속히 지역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다. 치료 의지를 갖고 증상을 관리하는 만성기 환자는 지역사회에 살며 외래진료를 받게 하고, 그들이 있던 병상을 병식(병에 대한 인식)이 없고 자·타해 위험이 큰 급성기 환자가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병철 한림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정신과 전체 병상 수는 절대 적지 않지만, 만성기 환자의 병상이 많다”면서 “이들이 퇴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급성기 환자 치료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이 손에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치만 어쩌겠어요.”
중증 정신질환을 가진 부모들이 한 번쯤 가져본 마음이다. 실제로 부모가 정신질환 자녀의 손에 죽거나 죽을 뻔한 참극이 전국에서 매년 20건 이상 발생한다. 존속살해범이 된 정신질환자 한 명에게 엄한 죗값을 물어도, 바뀌는 건 없었다.
세계일보는 8개월간 무엇이 그를 부모를 죽인 범죄자로 만들었는지 추적했다. 최근 10년 치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판결문 823건을 살피고, 정신질환과 관련된 사건의 규모와 특성, 원인을 분석했다. 정신질환이 있는 당사자와 가족, 의료계와 법조계 전문가 등 84명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전한다.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