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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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 트럼프 의회난입 선동 장소서 “자유·분열 중 선택” 호소 [2024 미국 대선]

디일립스 공원서 ‘최후 변론’ 연설
워싱턴 지역 지지자 7만여명 모여
‘트럼프, 민주주의에 위협’ 메시지
“그는 ‘적 리스트’ 가지고 가겠지만
난 ‘할 일 리스트’ 들고 백악관 갈 것”

“위험한 사람 복귀, 상상만으로 끔찍”
지지자들도 트럼프 저지에 공감대

“이번 대선은 자유에 뿌리내린 나라냐, 혼란과 분열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냐의 선택이다.”

11월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백악관을 뒤로한 채 워싱턴의 디일립스(The ellipse) 공원에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하자 이 일대에 모인 수만명의 사람들이 격하게 환호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연설한 곳은 타원(ellipse) 모양으로 된 백악관 앞의 공원으로, 4년 전 대선에서 패배한 뒤인 2021년 1월6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극성 지지자들의 연방 의사당 난입 사태를 이끈 ‘선동 연설’을 한 곳이다. 해리스 부통령이 ‘최후 변론(closing argument)’이라고 이름 붙인 연설은 현지시간 오후 7시30분 넘어 약 30분간 진행됐는데, 일부를 제외하고는 내용의 거의 대부분이 “트럼프를 막아야 한다”는 호소에 가까웠다.

치열한 유세전 29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2021년 1월6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결과에 불복해 극성 지지자들을 자극하며 선동 연설을 한 워싱턴 백악관 앞 공원 디일립스에서 개최한 유세에서 “트럼프를 막아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남색의 수트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가 누군지 안다. 그는 4년 전 바로 이곳에서 무장한 군중을 미국 의회 의사당으로 보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서 나타난 국민의 의지를 뒤집으려 했다”며 “이제는 미국에 새로운 세대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는 ‘적 리스트’를 가지고 백악관으로 갈 것이지만 나는 ‘할 일 리스트’를 갖고 갈 것”이라며 “나는 열심히 일하며 앞으로 나아가려 분투하는 미국인들을 돕기 위해 민주당원, 공화당원, 무당파와 함께 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본인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과도 함께 일하겠다면서 “나는 모든 미국인을 위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리스 부통령은 또 “세계의 지도자들은 트럼프를 아첨과 호의로 쉽게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여러분은 푸틴(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번 선거에서 그를 응원한다고 믿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가 연설을 마친 뒤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 변호사가 나와 무대에서 그와 함께 관중에게 인사했지만, 바로 뒤 백악관에서 근무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당초 5만여명의 군중이 모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해리스 부통령 캠프는 7만5000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같은 장소에서 매년 독립기념일에 진행되는 불꽃놀이 행사의 인파와 비견되는 수준이었다. 일반적인 유세와 달리 지원 유세도 없고, 별다른 이벤트도 없었으며 미국 국가 연주와 해리스 부통령의 연설이 다인 행사였지만, 끝없이 사람들이 밀려들면서 줄의 시작이 어디인지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한 남자가 “도대체 줄이 어디서 시작되는 거야?”라고 말하자 일행이 “아무도 몰라!(No one knows)”라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날 모인 시민들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막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 공원 입구 근처에서 만난 대프니(36)는 1시간30분 동안 줄을 서서 입구까지 왔다며 “트럼프처럼 위험한 사람이 다시 백악관에 돌아온다는 상상만으로 이 나라에 사는 것이 끔찍해지기 때문에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려고 왔다”고 말했다. 쌀쌀한 날씨에 아기를 담요에 싸서 유모차에 태워 데리고 나온 가족도 있었으며 퇴근길에 샌드위치 등 간단한 저녁거리를 사서 먹으면서 긴 줄을 서는 사람도 여럿 보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주요 경합지 중 하나인 펜실베이니아주 앨런타운에서 열린 집회에서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하면 전체 선거에서 이길 것”이라고 주장하고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다. 앨런타운=AP연합뉴스

‘투표하라(Vote)’라는 배지를 단 사람도 많았지만 ‘투표했어요(I voted)’라는 배지를 단 사람도 상당해 사전투표 열기를 실감케 했다. 인근 메릴랜드에서 왔다는 닐(53)은 “4년 전 이곳에서 벌어진 일은 너무 처참한 일”이라며 “트럼프를 막아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교통 통제로 평소보다 지하철에 많은 사람들이 몰렸으며 워싱턴의 일부 공공기관들은 재택근무를 장려하기도 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미국시간으로 선거를 1주일 앞두고 경합주에서 유세를 한 번 더 하는 대신 수도 워싱턴의 1월6일 의사당 난입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장소에서 이 같은 연설을 한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위험을 전국적인 마지막 선거 메시지로 강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경제와 이민 문제가 이번 선거의 화두가 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유력 후보로 떠오른 상황에서 해리스 부통령의 ‘민주주의 수호’ 메시지가 워싱턴 같은 민주당 강세 지역 외부에서 얼마나 호소력을 가질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워싱턴=홍주형 특파원 jh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