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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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우리] 北의 우크라戰 참전, 방관할 수 없다

김정은 체제 유지 한계 몰리자
세계대전 우려 무시하고 결정
러, 첨단 무기 등 지원 확대 명확
정부, 실질적 대응책 모색해야

북한이 파병했다. 북한 최초의 대규모 해외파병이다. 정보기관들에 따르면 12월까지 무려 1만2000여명, 4개 여단 규모가 파병된다. 전장은 러시아가 불법 침략한 우크라이나이다. 미국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도 세계대전으로 확전될까 걱정하며 우크라이나에 정보와 무기를 제공하는 데 그쳤지만, 북한은 주저 없이 참전했다. 명분과 대의를 내던지고 러시아로부터 얻어낼 이익을 위해 ‘용병’을 자처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회로 본다. 북한은 중국의 지원으로 국제경제제재 국면을 어떻게든 버텨왔다. 중국은 북한 핵 개발을 합리적인 안보 우려라면서 북한 체제의 생존을 지원해왔다. 그러나 막대한 핵 개발 자금에 더해 인민의 생활고까지 책임져야 하는 김정은에게 중국의 지원은 동정 어린 적선일 뿐이다. 반면 지원에 인색하지만 일단 결심하면 대규모 거래가 가능한 러시아는 ‘동아줄’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 연구위원

불법침략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러시아는 자기편에 서는 국가에겐 지원을 아끼지 않아 왔다. 전쟁 초기부터 자폭드론과 탄도미사일을 공급했던 이란은 이듬해부터 최신형 Su-35 전투기를 인수하고 면허생산까지 허락받았다. 러시아에 필요한 탄약과 무기를 전달하면서 북한도 혜택받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집요한 공격으로 유엔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은 공중분해되었고,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유엔 안보리의 추가 대북제재는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북한은 러시아가 가장 원하는 것을 드디어 제공했다. 바로 병력이다. 여태까지 러시아가 기록한 사상자는 60여만명에 이를 것으로 나토는 추정한다. 전쟁 이전 현역 병력이 90만명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피해이다. 개전 후 현역을 120만명으로 증원했던 러시아는 올해 말부터 150만명까지 늘리겠다고 밝혔지만, 1000㎞에 이르는 전선에 70만명의 병력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겹다. 주요 격전지에서 1민~2만명의 추가병력만 있어도 이길 수 있음에도, 당장 보낼 병력이 없다.

그래서 북한이 보낼 1만여명의 병력은 가뭄 속의 단비이다. 평상시 같으면 별다른 감동이 없을 도움이지만, 러시아군의 승패를 가른 결정이 된다. 게다가 현지 첩보에 따르면 북한군은 최대 8만8000명까지 파병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 파병은 러시아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승리를 위한 핵심동력이 된다.

북한의 파병 결정이 동료 독재자를 향한 선의의 도움일 리 만무하다. 북한 파병부대에 상당한 사망자가 속출하면 김정은 체제는 흔들릴 수 있다. 사망 확률이 높은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은 김정은 정권에게 커다란 도박이다. 위험이 클수록 반대급부도 커지고, 대가 지급도 먼저 보증되어야 한다. 결국 북한 파병은 양측의 거래가 이미 끝났음을 방증한다. 경제적·군사적 이익은 차치해도, 전쟁이 끝나도 소모된 무기를 다시 채워야 하는 러시아에 북한은 중요한 파트너가 되었으며, 그 대가로 북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려고 한다.

우리는 그간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이유로 대러 제재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북한 파병이 결정된 이상 러시아는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북한에 약속하고 이행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자제하고 설득해도 러시아의 북한 지원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제 러시아의 선의에 기대는 우매함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대한민국은 정부수립 2년 만에 북한 침공으로 국가를 잃을 처지에 놓였었다. 당시 국제사회는 2차대전의 후유증에도 자유민주주의와 국가 주권을 지키고자 용기와 희생을 마다치 않았다. 한국이 도대체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던 이방인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냈기에 오늘날 한국이 있을 수 있었다. K방산 수출강국이라고 일컫기 전에 70여년 전 우리와 같은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나라를 도울 수 있는 용기부터 가져야 한다. 북한에 어디서건 자유민주주의를 흔들 수 없음을 몸소 느끼게 해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