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는 연금·의료·교육·노동 개혁에 저출생 위기 극복을 더한 ‘4+1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었지만, 윤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을 앞둔 현재, 연금·의료 개혁 추진은 난항을 겪고 있다.
의료개혁은 의료계와의 갈등이 9개월째 이어지고 여야 간 입장차까지 부각되면서, 전체 국정 운영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들어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가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조건으로 내건 무조건적 ‘의대생 휴학’을 정부가 허용하자 이번엔 내년 의대생 교육 부실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3일 의학 교육 평가·인증에 관한 시행령 개정에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을 무력화하는 시도”라며 철회를 거듭 요구했다. 이들은 “교육부 시행령 개정안은 무모한 의대 증원으로 발생할 의학교육의 질적 저하를 무시한 채 정부의 잘못된 조치를 땜질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의평원이 증원된 의대의 평가·인증을 강화하자, 불인증 판단에도 1년 이상의 보완기간을 부여하는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예고된 데 대한 비판이다.
두 단체는 전날 “교육부나 대통령실은 더 이상 휴학 등 파생적인 이슈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2025년도 의대 모집 인원 재조정 등 근본적인 사태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대생 휴학 허용으로 내년엔 올해 1학년(3000명)이 복귀하고, 증원된 신입생(4500명)을 더하면 최대 7500명이 수업을 듣게 돼 부실 교육이 우려되니 각 대학이 인원을 재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대학에선 24학번은 1·3학기, 25학번은 2·4학기 수업을 듣게 하는 등 4학기제 운영이 검토되고 있고, 교육부는 의대 6년 과정을 최소 5년 이상으로 하되 5.5년이나 5.7년으로 개설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분반이나 온라인강의 등 급증하는 의대생 분산 대책이 논의되지만 교실·교수 확충이 확정되지 않아 내년 의대생 교육은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본과 4학년도 대거 휴학할 것으로 관측돼 내년 의사 배출도 급감할 전망이다. 올해 9월 시행된 의사 국가시험 실기 합격자는 266명으로 지난해(3069명)의 9%에 불과하다.
여야 간 이견 등으로 아직 출범하지 못한 협의체가 시작돼도 갈등이 쉽게 해소되긴 어려워 보인다. 의료계는 2025년 정원 ‘원점 재검토’(전공의·의대생)나 ‘모집인원 재조정’(교수단체)을 주장하지만 정부는 “내년 의대 정원 수정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연금개혁은 정부 단일안까지 제시됐지만 이후 정치권 논의는 멈춰선 상태다. 정부는 지난 9월4일 보험료율은 9%에서 13%로 올리되 세대별로 차등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은 42%로 유지하는 개혁안을 내놨다. 2003년 이후 오랜만에 나온 정부의 두 번째 단일 개혁안이지만, 지난 국회의 공론화 과정이 반영되지 않은 데다 유례없는 세대별 차등 인상, 자동안정장치 도입 등의 문제로 야당의 호응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여야 논의를 통해 합의안을 만들어주면 최대한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교육 분야에선 의대 교육 우려 속에, 초등학교 정규수업 전후 교육·돌봄을 강화한 ‘늘봄학교’가 당초 예상보다 6개월 빠른 올해 2학기 전면도입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어린이집·유치원을 합치는 유보통합도 올해 복지부에서 어린이집 업무를 이관받으며 첫발을 뗐다. 다만 유보통합은 교사 통합에 대한 유치원 교사의 반발이 커 진통이 예상된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대표정책인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도 내년 3월 현장에 도입되는데, 학부모·교사의 시기상조 우려를 어떻게 불식시킬지가 숙제다.
노동 분야에선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올해 2월 활동을 재개해 공무원·교원의 유급 노조활동에 합의하면서 성과를 기대할 만하다는 관측이다. 경사노위는 내년 1분기 안에 계속 고용에 대한 결론을 내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등 다른 노동 개혁 과제들에 대해서도 성과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김덕호 경사노위 상임위원은 “노동개혁 과제를 경사노위에 가져왔고, 논의에 속도가 나고 있다는 점은 의미가 작지 않다”고 했다.
정부는 올해 6월 인구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저출생 문제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7·8월 출생아 수가 지난해 동기보다 각각 1000명 넘게 증가해 올해 합계출산율이 9년 만에 하락세를 멈출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서 인구전략기획부 연내 출범 등도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