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취업하면 차부터 살 생각이었는데, 이젠 면허 딸 생각도 없어요.”
대학 졸업을 앞둔 서모(26)씨는 졸업 전 운전면허를 취득하려던 계획을 최근 보류했다. 취업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면허를 따는 것 자체가 사치라는 생각에서다. 서씨는 “주변에 취업한 친구들이 차를 샀다가 경제적 부담을 호소하는 경우를 많아 봤다”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분수에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운전면허 신규 취득자가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 예전에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부터 면허를 일찍 취득하려는 경향이 강했는데, 청년층의 경제적 독립이 늦어지면서 면허 취득도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4일 전국자동차운전전문학원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운전면허 신규 취득자는 88만명으로 전년(96만8143명) 대비 9.1% 감소했다. 2021년 신규 취득자는 107만명 수준이었는데, 2022년 100만명선이 무너진 데 이어 가파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감소세를 이끄는 것은 청년층이다. 경찰청이 조사한 지난해 생애 최초 면허 취득자는 57만1363명인데, 이들 중 10대와 20대의 비중이 80% 수준이다. 통상 면허를 어린 나이에 미리 취득하는 경향이 반영된 것이다. 10대와 20대의 면허 취득자는 2019년과 비교해 지난해 각각 18.7%, 13.2%씩 감소했는데, 이는 줄어든 전체 면허 취득자 수(8만9243명)의 98.1%(8만7551명)를 차지한다.
청년층의 면허 취득 감소는 단순히 젊은 인구가 줄어서만은 아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지난해 10대와 20대 인구는 2019년(492만명·702만명) 대비 각각 6.8% 줄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면허 취득자는 10대가 18.7%, 20대가 13.2% 감소해 인구 감소율의 2~3배에 달했다. 반면 30대는 인구가 6.57% 줄었음에도 면허 취득자는 오히려 2.87% 늘었다.
서울 소재 운전면허학원을 운영하는 김모(58)씨는 “확실히 예전보다 20대 손님들이 줄었다”며 “원래 대학생들 방학 때가 제일 성수기인데, 지금은 파리만 날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런 여파로 전국의 자동차 운전학원 수는 2019년 383개에서 지난해 356개로 7% 감소했다.
청년층의 면허 취득 감소는 계속되는 취업난과 길어진 경기 불황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첫 일자리가 계약기간 1년 이하인 비정규직 청년(15~29세) 비중이 지난 5월 기준 31.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10년 전인 2014년 5월(19.5%)과 비교하면 11.9%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은 일시적 임금근로 일자리 비중 7.7%까지 더하면 불안정한 일자리를 가진 비중은 전체 청년의 39%에 달한다.
청년들의 신차 구입도 덩달아 줄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20대의 신차 구입은 2013년 11만1558대에서 지난해 8만6749대로 10년새 22% 감소했다. 같은 기간 30대도 27만7081대에서 20만9201대로 24% 줄어들었다.
일각에선 청년층의 거주지가 도심에 집중되고 대중교통 등을 통한 이동 수단이 날로 편리해지고 있는 것 역시 이 같은 현상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재원 한국도로교통공단 교수는 “대중교통 환승 제도뿐 아니라 면허가 필요 없는 공유 자전거 등의 개인형 이동장치(PM)로도 이동이 쉬워지면서 청년층의 면허 취득 욕구가 줄어든 것 같다”며 “교통 수요 관리 측면에서 이른바 Maas(Mobility As A Service) 정책이 성공한 결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