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두고 독일을 방문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이 독일 등 나토 회원국들을 향해 “더 많은 국방비 지출”을 주문했다. 미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가능성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4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베를린을 찾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회담했다. 약 14년간 네덜란드 총리를 지낸 뤼터는 과거 숄츠와 여러 차례 만났으나, 지난 10월 나토 사무총장에 취임한 이후로는 첫 양자 회동에 해당한다. 독일은 나토 역내에서 미국에 이은 제2의 경제대국으로,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에도 미국 다음가는 규모의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뤼터는 숄츠와 회담을 마친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올해 독일의 방위 예산이 30년 만에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2% 비율을 달성한 점을 거론하며 높이 평가했다. ‘GDP 대비 2% 이상 국방비 지출’의 원칙은 나토가 오랫동안 회원국들에게 권장해 온 사안이다. 다만 2021년까지는 이 기준에 도달하거나 넘어선 회원국이 소수에 불과했다. 그래서 트럼프는 대통령 임기(2017년 1월∼2021년 1월) 내내 나토 회원국들에게 ‘GDP 대비 2%’ 룰을 지킬 것을 강력히 촉구했고, 그 과정에서 일부 동맹국과 심한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안보 위기를 느낀 나토 회원국들은 앞다퉈 방위 예산을 증액했다. 그 결과 독일을 비롯한 상당수 국가가 GDP의 2%에 해당하는 금액을 국방비로 편성했다. 이날 뤼터는 독일을 지목해 ‘GDP 대비 2% 달성에 안주하지 말고 국방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라는 취지의 권고를 했다. 그는 기자회견 도중 “모든 나토 동맹국들은 (국방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며 “독일이 계속해서 (방위 예산 증액에) 나설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숄츠가 바로 옆에 서 있는 가운데 독일의 국방비 증액을 공개적으로 압박한 셈이다.
뤼터는 독일이 우크라이나를 위한 군사지원에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쟁이 어느새 2년 10개월 가까이 장기화하면서 독일 국민들 사이에 피로감이 커지는 현실을 경계한 것이다. 뤼터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승리하더라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그에 만족하고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이대로 무너지면 다른 유럽 국가들도 러시아가 가하는 안보 위협에 직면할 것이란 경고인 셈이다.
나토 사무총장 취임 후 뤼터는 부쩍 트럼프와 ‘코드’를 맞추고 있다. 최근 뤼터는 ‘나토 동맹국들이 국방에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는 트럼프의 주장이 옳았다며 “덕분에 나토 회원국 상당수가 GDP 2% 방위비 지출이란 기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대통령 임기 중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 구상을 꺼내들고 경제와 안보 다방면에 걸친 대(對)중국 압박을 가한 점에 대해서도 뤼터는 “올바른 방향이었다”며 극찬했다.
5일 치러질 미 대선은 트럼프와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막판까지도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박빙 대결을 펼치고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에 대비해 뤼터가 트럼프 쪽에 ‘러브콜’을 보내는 것이란 평가를 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