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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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훈선수 인터뷰 도중에도 드러난 누나 이다현의 동생 이준영을 향한 내리사랑 “무슨 범실을 했을까요…?”

여자 프로배구 현대건설과 페퍼저축은행의 2024~2025 V리그 여자부 1라운드 맞대결이 펼쳐진 5일 수원체육관. ‘디펜딩 챔피언’으로 통합우승 2연패를 노리는 현대건설과 창단 후 세 시즌 간 꼴찌를 면치 못한 페퍼저축은행의 맞대결은 시작 전부터 현대건설 쪽으로 기울어있었다.

 

그 이유는 딱 하나. 페퍼저축은행에는 외국인 아포짓 스파이커가 없기 때문이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페퍼저축은행의 새 사령탑으로 부임한 장소연 감독은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해 바르바라 자비치(크로아티아)를 뽑았다. 191cm의 신장과 파워넘치는 공격력이 돋보였던 자비치는 트라이아웃 현장에서 1순위감으로 거론됐고, 페퍼저축은행이 1순위 지명권을 얻어 그를 뽑았다.

 

그러나 자비치의 기량은 기대 이하였다. 예쁘게 잘 세팅되어 올라온 공에는 상대 코트를 쪼갤듯한 넘치는 파워를 앞세운 스파이크를 보여줬지만, 이단 연결되어 올라온 공을 처리하는 게 미숙했다. 상대 블로킹 벽을 이용해 밀어 때리거나 상대 수비의 빈틈을 이용하는 등의 노련함이 부족했다. 결국 자비치는 시즌 첫 2경기만 소화하고 어깨부상과 기량미달을 이유로 퇴출됐다. 자비치 대신 영입한 테일러 프리카노(미국)은 비자와 국제이적동의서(ITC) 발급이 되지 않아 이날 경기도 관중석에서 지켜봐야 했다.

 

남은 관전포인트는 자타공인 V리그 여자부 현역 최고의 미들 블로커 양효진과 아시아쿼터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1순위로 뽑힌 미들 블로커 장위(중국)의 맞대결이었다. 장위는 196cm의 신장을 앞세운 파워 넘치는 속공과 외발 공격 능력에 블로킹 능력도 최상급이었다. 스스로를 중국 내에서 3~4번째 손가락에 꼽히는 미들 블로커로 소개한 장위와 양효진의 V리그에서의 첫 맞대결 양상이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두 선수는 네트를 마주보고 맞대결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로테이션 상 장위와 양효진은 엇갈려 끝에 한 자리 정도에서만 전위에서 마주보고 플레이하는 정도였다.

 

양효진 대신 장위와 정면 승부를 벌인 것은 ‘다띠’ 이다현이었다. 이다현은 장위의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견제해내며 그의 공격력을 반감시켰다. 장위는 이날 서브득점 5개, 블로킹 2개 포함 13점을 올렸다. 서브와 블로킹은 돋보였지만, 공격력은 그리 발휘하지 못했다. 속공(50%, 3/6)과 오픈(75%, 3/4)은 수준급 성공률을 보였지만, 주특기 중 하나인 이동 공격은 네 차례 시도해 하나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이다현의 견제가 효율적으로 들어간 덕분이었다. 특히 이날 승부가 끝난 4세트에는 장위는 단 하나의 공격도, 블로킹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장위를 잘 견제하면서도 이다현은 블로킹 3개와 서브득점 1개 포함 9점(공격 성공률50%)을 기록하며 현대건설의 3-1(25-16 17-25 25-21 25-17) 승리에 힘을 보탰다.

 

경기 뒤 정지윤, 모마와 함께 수훈선수 인터뷰에 임한 이다현에게 장위와의 맞대결에 대해 물었다. 이다현은 “지난 통영에서의 KOVO컵 때는 처음 장위를 상대하는 것이다보니 경기를 하면서 적응을 해나갔다면, 오늘 경기는 미리 장위를 어떻게 상대할지 생각하고 임했다. 장위의 공격을 유효블로킹 처리하는 게 잘 먹혔던 것 같다. 장위를 앞으로 어떻게 상대해야할지 갈피가 잡힌 것 같다”라면서도 “오늘은 페퍼저축은행에 외국인 선수가 없어서 잘 먹힌 것 같긴 하다. 오늘은 대놓고 장위 위주로 잡으려고 경기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현대건설과 페퍼저축은행의 수원 경기가 열리는 동시간대에 인천 계양체육관에서는 대한항공과 KB손해보험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KB손해보험은 지난달 열린 남자부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로 지명된 이다현의 동생 이준영의 소속팀이다. 이준영은 이날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이준영은 드래프트 당시 “앞으로는 ‘이다현의 동생’이 아닌 누나가 ‘이준영의 누나’가 될 수 있게 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이다현에게 ‘지금 동생이 데뷔전을 치르고 있다’라고 알려주자 “안 그래도 오늘 선수 등록이 됐다면서 그걸 보여주더라.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세세한 부분에 대해 상의를 했다”라면서 “동생에게 ‘앞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생각한대로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배운대로 해라’ 등의 조언을 해줬다”라고 말했다.

 

‘자주 연락을 하느냐’는 질문에 이다현은 “거의 매일해요. 그만 좀 하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매일 먼저 연락이 와요”라며 츤데레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인터뷰가 진행될 때 대한항공과 KB손해보험은 4세트를 치르고 있었다. 이다현에게 ‘이준영이 오늘 매세트 원포인트 서버로 나왔고, 아직 득점은 없고 범실 1개만 했다’고 알려주자 “정말요? 무슨 범실을 했을까...”라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매일 연락하는 동생이 귀찮다는 듯 말했지만, 누나의 진심은 동생을 향한 걱정, 내리 사랑이었다.

 

이날 1~4세트에는 교체 멤버로 출전했던 이준영은 5세트에는 선발 미들 블로커로 출장했다. 그러나 공격이나 블로킹, 서브 득점 등 데뷔 첫 득점에는 실패했다. 유일하게 기록지에 남은 것은 2세트 21-20에서 남긴 서브범실이었다. 


수원=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