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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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판사가 던진 질문들 [이지영의K컬처여행]

최근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가 종영했다. 나쁜 놈들을 제대로 처벌하지도 못하는 현실의 법 대신 악마라는 초현실적인 존재가 죄인들을 가차 없이 처단하여 지옥으로 보내는 사적 복수를 다룬 드라마이다. 이렇게 사적 복수를 전면으로 내세운 드라마들은 2000년대 이후 한국 드라마에서 빈번하게 반복된 테마이다. 대표적으로는 ‘더 글로리’, ‘모범택시’, ‘빈센조’ 등 많은 이에게 인기 있었던 드라마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이렇게 ‘지옥에서 온 판사’는 사적 복수를 통해 사회에 대한 반성적 통찰을 보여주는 사회 비판적 K드라마들의 계보에 있다.

 

줄거리를 짧게 살펴보자. 지옥의 재판관 유스티티아는 죄인을 실수로 처벌한 대가로 1년 안에 살인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고 용서받지도 못한 죄인 10명을 죽여 지옥으로 보내야 하는 벌을 받고 인간 판사 강빛나(박신혜 분)의 몸으로 살게 된다. 강빛나는 지옥으로 보낼 살인자라는 확신이 들면 일부러 가벼운 판결로 죄인을 풀어준 후 유스티티아의 ‘진짜 재판’으로 죄인을 지옥으로 보낸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쾌감을 주는 부분이 바로 ‘진짜 재판’에서의 미러링 폭력 장면과 실제로 죽을 만큼 때리는 장면, 그리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라며 거짓 용서를 구하는 죄인을 “그럼 죽어야지”라며 가차 없이 죽여버리는 장면들일 것이다. 물론 지나치게 폭력적인 장면들이 등장한다는 점은 비판할 수 있지만, 이 정도는 되어야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테니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사적 복수의 통쾌함을 스펙터클로 삼은 ‘지옥에서 온 판사’는 흥미롭게도 공적 해결의 답답함을 비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회에서 강빛나는 인간 세상에서 진짜 판사가 되어 제대로 된 공적 정의를 구현하게 된다. 이와 함께 드라마는 범죄 피해자의 유가족이자 경찰인 한다온(김재영 분)이 사적 복수와 공적 해결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피해자와 피해 유가족이 용서하지 않은 죄는 법도 용서하지 않는다.” 마지막 회에서 강빛나가 낭독한 판결문의 일부다. 피해자가 용서의 주체라면, 법은 처벌의 주체일 것이다. 사적 복수는 이 간극을 메우는 방법이었다. 이 드라마는 피해자를 처벌의 주체로 만들기보다, 법을 용서의 주체로 설정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이것이 남기는 질문을 함께 고민하자고 제안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용서가 피해자의 감정에서 나오는 사적인 결단일 때, 공적인 용서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한가?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한국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