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1월 9일 50대 남성 유 모 씨는 80대 노모와 70대 이모 그리고 5세 손녀를 데리고 강원도 가족 행사 참석을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가 참변을 당했다. 경기 양평에서 유흥비 마련을 위해 범행 대상을 찾던 남녀 4인조를 맞닥뜨린 것.
일당은 할머니 두 명을 24m 산기슭 아래로 밀어버린 뒤 노인이 떨어진 곳에 구덩이를 팠다. 이들은 유 씨에게 3000만 원을 요구했으나 유 씨에게 그런 돈은 없었다. 일당은 끈을 이용해 유 씨의 목을 졸랐고, 구덩이에 두 할머니와 유 씨를 넣고 유 씨의 외손녀 5세 여자아이는 무릎을 꿇렸다.
아이가 "살려달라"며 울고 있는데도 일당은 숨이 붙어있는 일가족을 잔인하게 흙으로 덮어 생매장했다.
인천서 교통사고에 흉기까지 휘두르다 차 버리고 도주
4인조로 범행을 저지른 건 31세 동갑내기 남성 오태환, 이성준, 윤용필과 이성준의 연인 심혜숙(21) 이었다.
이들의 범행이 밝혀지게 된 계기는 1990년 11월 1일 인천 시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심혜숙을 태우고 엑셀 승용차를 몰던 이성준은 한 택시와 충돌한 뒤 기사와 출동한 경찰에게까지 흉기를 휘두르다가 차를 버리고 도주했다.
경찰이 차 번호를 조회해 보니 강릉에서 도난신고가 된 차였다. 차 내부에서는 오태환의 차량등록증이 발견됐고, 가스총도 나왔다. 가스총 일렬번호를 추적하자 허가를 받은 사람이 윤용필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차적 조회…떠들썩했던 '강릉 신혼부부 납치 사건'의 범인
엑셀승용차를 도난당한 건 강릉 경포대로 신혼여행을 왔던 20대 부부였다. 인천 택시 사고 나흘 전인 10월 28일 4명의 일당은 인천에서 로얄프린스 승용차를 렌트해 강릉으로 향했다. 다음날 이들은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부부를 칼로 위협해 수표를 포함한 현금 260만 원과 패물, 엑셀 승용차를 강취했다. 이후 부부를 약 10㎞ 떨어진 야산에 끌고 간 일당은 소나무에 부부를 결박한 후 달아났다.
신혼부부 강취 사건에는 목격자가 있었다. 4인조의 범행 장면을 지켜본 중학생이 이들이 타고 온 로얄프린스의 차 번호를 기억했고, 경찰은 이를 통해 로얄프린스를 빌린 이가 이성준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4인조는 신혼부부에게서 뜯어낸 수표를 서울 강남의 한 술집에서 사용했는데, 경찰은 목격자 중학생과 술집 사장에게 4인조의 인상착의를 보여주고 이들을 용의자로 특정했다.
"지리산 놀러 가자는데 좀 이상"…공범 친구 신고로 검거·총격전
그러던 중 11월 10일 대전동부경찰서로 신고 전화 한 통이 들어왔다. 심혜숙의 친구 박 모 씨였다. 박 씨는 "친구인 심혜숙이 남자들과 지리산에 놀러 가자"고 했는데 "친구가 좀 이상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박 씨의 신고로 그의 집 앞에서 로얄프린스를 타고 온 오태환과 심혜숙을 검거했다.
경찰은 다른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성준과 윤용필도 쫓았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한 달 전인 10월 13일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경찰은 도망가는 두 사람에게 실탄을 쐈으나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윤용필은 비교적 가벼운 총상을 입은 상태에서 서울 영등포 친구 집에 숨어 있다가 주민의 제보로 붙잡혔다. 가슴에 총상을 입은 이성준은 그다음 날인 11월12일 대전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과다출혈로 사망한 채 발견됐다.
트렁크 속 삽·끈·버선 발견…경찰 추궁에 "양평 범인" 자백
경찰은 오태환과 심혜숙을 잡았을 때만 해도 양평 일가족 생매장 사건을 모르고 있었는데, 이들이 범죄에 이용했던 로얄프린스 트렁크에서 흙 묻은 삽 두 자루와 끈 그리고 버선이 발견됐다.
오태환과 심혜숙을 먼저 잡은 경찰은 두 사람을 추궁했고, 오태환은 충격적인 범행 사실을 자백했다. 11월 9일 경기 양평에서 두 할머니와 중년 남성 그리고 여자아이를 땅에 생매장했다는 진술이었다. 앞서 강릉 신혼부부 강도 사건으로 수배되자,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 것이었다.
경찰은 오태환이 지목한 장소로 가 시체를 발굴했고, 부검 결과 시체 네 구의 폐에서 모두 흙 성분이 나왔다. 네 사람 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생매장된 것이었다. 일당이 일가족을 살해하고 챙긴 돈은 고작 20만 원이었다.
사필귀정?…2명 사형, 가석방된 女공범 위암 사망
수사는 빠르게 진행돼 4인조 중 사망한 이성준을 제외하고 3명은 모두 구속기소 됐다. 강도살인·강도상해·시체은닉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12월 4일 모두 사형이 구형됐다.
이듬해 3월 5일 법원은 4명 모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후 심혜숙은 징역 10년으로 감형됐다. 금품강취에는 개입했으나 살인을 공모한 정황이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윤용필은 1992년 2월 29일에, 오태환은 1994년 10월 6일에 차례대로 처형됐다. 심혜숙은 1998년 가석방됐지만 2003년 7월 위암으로 사망, 사필귀정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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